장편소설 빛의 여정 69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장편소설 빛의 여정 69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으잇차!" 낑낑 거리며 바닥문을 열고 나오는 피데리시스 수도사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시테온이 옆에서 문을 같이 열어주고 로이딘이 그를 부축였는데 그가 사원에 온전히 발을 딛고 서게 되었을 때 숨을 한번 크게 몰아 쉬고 내쉬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로이딘 일행에게 인사했다.
"저 안에서 죽을 때 까지 갇혀 있을 줄 알았습니다."
로이딘이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묻자 수도사가 대답하길
"몇 일 전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었을 무렵 추적대원이 들이닥쳐서 신자들과 저희들을 몽땅 잡아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원 가장 앞 줄 좌석에 자리 한 가슴에 화살이 박혀 죽은 고개 숙인 수도사를 가르켰다.
"저기 죽어있는 우리 형제가 저항을 하는 틈에 잠시 소란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바닥문을 열고 재빨리 들어가 숨었습니다..."
말끝을 흐리는 수도사를 보면서 로이딘은 조용히 말을 계속하길 기다렸다. 그러자 그는 말을 이었다.
"추적대원들이 사람들의 옷을 막 벗기는 것 같았어요. 심지어 여자들도 벗기려고 그러던 거 같은데 비명소리가 나면서... 이후 끔찍한 일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헌데 다행히 소리를 듣자하니 겉옷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속옷만 입히고 끌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 옷가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고 운이 좋지 않게도 제가 들어온 유일한 출입구가 산더미 같은 옷가지에 막혀버렸던 것이죠."
로이딘은 기적의 사나이를 보면서 말했다.
"목숨은 건지셨으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끌려간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나요?"
수도사가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들이 닥치기 전 우리 사원 내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죽일 거란 예상들을 했었습니다. 하...그나저나 혹시 선생님들은 어디서 오셨을까요?"
로이딘이 말했다.
"저희는 헤르논에서 온 피데라시스 전투 수도사들입니다"
그 말에 수도사가 무언가 동아줄을 잡은 듯 안도하는 것 같았다.
"저희를 구하러 오신건가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늦은 것 같습니다 모두 가버렸어요"
수도사는 울먹였다.
자초지종을 좀 더 들어보니 추적대원이 들이닥친 게 이번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추적대원들은 "살려는 줄테니 모든 것을 두고 떠나라, 만약 다시 와서 그대로 있다면 모두 잡아갈 것"이란 엄포를 했다한다. 그러나 사원의 피데라시스 사제는 추적대원들을 앞에 두고 논쟁을 벌였고 주먹으로 얻어 맞고 잠시 쓰러지면서 첫 만남이 끝났다 했다. 그 후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아나티리캄에서 정말로 두번째 방문한 추적대원들은 자비없이 저녁 예배때 사람들이 모인 것을 노려 기습하여 그들을 모두 체포했다. 루네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추측했다.
"옷을 모두 벗긴 건 여기를 불태우려고 한 건 아냐?"
로이딘이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루네가 옷들이 여기저기 흩날린 채 놓여있거나 대충 쌓아둔 더미를 가르키며 말했다.
"필요하면 가져갔겠지 아니면 그냥 입힌 채로 데리고 갔겠지. 장작이 없으니까 그냥 이그네움 불쏘시개로 천더미에 불 붙여서 사원을 없애려고 한 게 아니냔 말이야"
시테온은 루네와 달리 바닥문을 가르키며 말했다.
"근데 저기 아래에는 뭐가 있었던 거죠? 확인해봐도 될까요?"
수도사는 기꺼이 아랫 문을 열어주어 안을 보게 했다. 그곳엔 작은 창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소량의 식량과 물 항아리등이 놓여있었고 수도사가 몇일 간 좁은 자리에서 뒤척였던 잠자리의 흔적도 보였다.
아랫 창고를 같이 바라보던 수도사가 말했다.
"만약 여자 수도사님의 말씀대로 이곳을 불태웠다면 저는 여기서 꼼짝없이 죽었겠죠"
루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대원들이 그럼 혹시 레도룬이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끌고 주로 어디로 돌아갑니까?"
로이딘의 물음에 수도사는 대답했다.
"저는 내막을 알지 못하지만 듣기론 레도룬에서 북쪽으로 하룻 거리 안되는 캠프가 있다 하더라고요. 사람들을 그곳으로 끌고가서 심문과 고문을 한다는 소문이 있고 아니면 즉결처형을 한다는 말도 있는데 여튼 흉흉한 곳인 것 같습니다."
이번엔 루네가 물었다.
"그러면 그 캠프 규모가 궁금한데 대원 수가 많나요?"
수도사가 난처해 하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기 찾아왔던 자들로 보아선 8명 남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서 아무래도 사원의 운명을 온전히 피데라의 축복을 빌면서 폐쇄해야 할 것 같았다.
로이딘 일행은 수도사에게 몸을 피할 것을 주문하고 갈 곳이 없으면 헤르논의 수도원으로 찾아가라 말했다.
수도사는 감사 인사를 하고 로이딘 일행을 떠나 보낸 후 사원의 문을 잠구고 떠났다.
로이딘 일행은 혹시나 캠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을 까 하고 마을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여성은 겁을 먹은 듯이 얼어붙어 있다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살피더니 널려있는 빨래들 안쪽으로 들어오라며 하고는 말했다.
"숨만 쉬어도 요즘은 위험해요. 캠프에 끌려간 사람이 제 이웃인데요.. 잡혀 가 있는 사람들이 거기 수십명이 된다는 데요?"
그리고 이렇다 할 얻을 정보들은 없었다. 다만 로이딘 일행은 머물 곳이 마땅 치 않아 혹시 방을 빌려줄 순 없냐고 물으며 그녀에게 이그네움 조각을 몇 개 건네주었다. 그러자 이그네움 조각을 보고 표정이 화사해진 그녀가 기꺼이 방을 내주게 되었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빵과 물을 가져다 주었다. 둥글게 셋이 모닥불에 앉은 로이딘 일행은 캠프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다. 루네가 캠프의 규모에 대해 어림짐작 해보았다.
"레도룬으로 찾아온 대원이 8명? 정도라 했잖아. 그럼 캠프에 상주하는 대원들이 적어도 수십명은 된다는 이야기인데...그런데 잡혀 간 사람들도 수십명이다? 그냥 캠프에 있는 사람 전체를 착각한 게 아닐까 싶은데?"
로이딘이 그 말을 곰곰히 듣다가 이해가 되었는지 대답했다.
"그니까 잡혀간 사람하고 대원들이 합쳐서 수십명인데, 레도룬으로 온 놈들이 8명 정도면 포로 대비 감시자들은 많지 않을 거란 말이야?"
루네가 만족하며 끄덕였다.
"옳지 옳지 영리하다 영리해, 바깥공기 마시니까 우리 로이딘이 똑똑해졌나봐"
시테온이 조용히 그러나 뻔뻔하게 박수치고 있었다.
로이딘은 헛웃음을 지으며 무안한 듯 모닥불을 나뭇가지로 들쑤시고 있었다.
루네가 불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럼 우리가 캠프를 습격해야한다는 이야기일 까?"
시테온과 로이딘이 그 말을 듣고 동시에 눈이 크게 떠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두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미쳤어!?"
70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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