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71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장편소설 빛의 여정 71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숲을 통과하면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눈도 함께 내렸다. 영원한 추위가 들이닥친 후에 좋은 날이 손에 꼽았다고는 하지만 이 날처럼 안 좋은 날씨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황야에서 바람과 함께 눈을 맞는 로이딘 일행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보려 애썼다. 캠프를 하루 빨리 도착해야 혹시 모를 피데라시스들을 목격 하여 대화를 하거나 구출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의지가 무색하게도 눈발이 거세지자 말의 고삐를 잡고 방향을 틀어 조금이라도 눈을 맞지 않으려 숲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찾아봐도 동굴이나 몸을 숨길 곳이 없자 로이딘 일행은 당황했다. 루네가 말했다.
"이런 젠장! 눈이 너무 많이 내리잖아. 그늘 져 있는 곳이라도 찾아봐!"
시테온과 로이딘이 양 갈래로 길을 나눠 가면서 혼자서들 몸을 피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로이딘은 영원한 추위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북쪽 검은나무"의 잎들도 소용이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여 다시 황야로 나가 바위를 찾아보려 했다. 말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달렸고 동시에 눈발도 점점 겉잡을 수 없이 거세지면서 땅을 온통 하얗게 만들며 층층히 쌓이고 있었다. 잠시 후 황야로 나온 로이딘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몸을 돌려 뒤를 봐도 숲 속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자 두려움이 올라 와 가슴을 쳤다. 그러다 이미 습관처럼 입에 붙은 자신의 주문을 무심결에 내뱉었다.
"피데인티..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그러자 갑자기 말이 앞 발을 들었다. 로이딘이 깜짝 놀라면서 넘어 질 뻔 했지만 말 목을 붙잡으며 버텼다. 왜 그런지 봤더니 앞에 보이는 눈 덮인 땅에서 빛들이 솟구쳐 나와 하늘로 올라 비추고 있었다. 거센 바람과 흐린 먹구름과 하늘 그리고 하얀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줄기들이 서로 대비가 되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로이딘은 멍하니 광경을 지켜보았고, 어느새 말의 갈기와 자신의 머리를 뒤덮던 눈들이 점차 약하게 내려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발이 잦아들었고 언제 그랬냐는듯 보이지 않던 안개들도 산산히 흩어져 시야가 확보되었다.
시테온과 루네의 목소리도 이내 들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로이딘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로이딘은 말을 다시 뒤로 돌려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멀리서 시테온과 루네를 보고 상봉하듯 반갑게 달려갔다. 시테온이 달려온 로이딘에게 말했다.
"와.. 너 없어져서 놀랬다"
루네가 걱정되었는지 토끼 눈처럼 바라보다 말했다.
"로이딘 너 괜찮은거야?"
로이딘은 오히려 방금 전의 광경으로 놀라운 체험을 하고 온 지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 괜찮아 눈이 그쳐서 다행이야."
시테온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소나기처럼 내리더니 금새 사라져버렸네, 봐바 바람도 희미해졌어!"
로이딘은 방금 전의 상황을 말해줄까 말까 하다가 나중에 해주기로 하고 함구했다. 루네가 말했다.
"다행히 그쳤으니 어디 숨지 않아도 되겠다. 여튼 다시 가야겠지?"
로이딘 일행은 다시 숲을 빠져 나온 후 황야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햇빛 없는 흐린 하늘임에도 눈들이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녹고 있었다. 로이딘은 속으로 "자연 현상이 아니다"란 추측을 했다. 누군가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듯 했다.
또 얼마나 달렸을 까? 무엇을 보았는 지 앞에 달리던 루네가 서서히 말을 천천히 몰기 시작했고 뒤에서 따라오던 로이딘과 시테온도 속도를 늦추었다. 루네가 뒤를 돌아보며 검지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며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면서 작게 말했다.
"저기가 캠프인가? 멀리서 보이는데"
그러자 로이딘과 시테온이 입은 닫은 채 서둘러 루네 옆으로 와서는 그녀가 가르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지평선 끝자락에 연기가 여럿 피어 올랐고 주변엔 말들이 묶여져 있고 텐트들이 쳐져 있었다. 간이로 만든 나무 울타리도 몇개 박혀 있었는데 무엇보다 격자 나뭇살로 만들어진 감옥이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루네가 방금 말한 그곳, 바로 캠프였다.
캠프는 하필이면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가면 다리가 있었고 북쪽으로 가면 다시 산길로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 캠프가 떡하니 차지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무장한 순찰병도 있었다. 로이딘 일행이 가까이 갈수록 점차 모습이 명확해져갔다. 서쪽과 북쪽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검문소 역할도 하는 것같았다. 교차지점에 나무 울타리와 모닥불 그리고 창 여러 개가 꽂혀져 금새라도 출동준비를 마친 경비병들이 입구에 있었는데 이때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고 캠프 주변은 한산했다. 무언가 소문이라도 안 좋게 났는지 사람들이 그곳을 회피하고 다른 곳으로 우회해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지나치는 모든 이들을 싸그리 잡아가두는 바람에 한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로이딘 일행은 인근의 바위가 많은 곳으로 조용히 움직여 몸을 숨겼다. 말들은 따로 숨겨 묶어 놓았고 사람만한 바위에 숨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할 지 논의했다.
단서가 캠프에서 끊겼고, 기대보다 인근에 사람들도 없는 황야라 누군가를 붙잡고 캠프 근황을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직접 그들은 캠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시테온이 자처했다.
"내가 아나티리캄 출신이니 훨씬 자연스러워 보일거야. 저들은 테오메자 신도들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있으니 내가 좋은 먹잇감이 되겠지"
그러자 루네가 만류했다.
"아냐, 시테온 너무 위험해.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지만 네 목숨이 위험해 질 수 있잖아"
시테온이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우리 의리넘치는 친구들이 어떻게든 구하러 오지 않겠어?"
로이딘은 막상 현장으로 도착하니 전투가 벌어질 지 몰라 겁이 크게 났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애들아, 그냥 이번은 통과하고 다른 지역으로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게 어때?"
그러자 루네와 시테온이 고개를 저었다. 시테온이 말했다.
"수도원에서 레도룬을 직접 지목한 건 여기에 피데라시스들이 많기 때문이란 설명을 들었잖아"
시테온도 자기가 자처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표정은 막막한 지 긴장하고 있었다. 루네가 나서기엔 전투가 벌어지면 원거리에서 지원을 할 수 없었다. 로이딘은 시테온의 표정을 보면서 금방 자기가 내뱉은 말에 대해 후회를 했는 지 갑자기 침을 삼키고는 입을 뗐다.
"차라리 내가 나설게, 피데라를 직접 목도한 이가 피데라시스의 사람들과 교리를 잘 알고 있으니"
시테온과 루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로이딘도 위험하다고 말릴려는 제스처를 취해보았으나 이러면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로이딘은 분위기를 읽고선 그냥 자기가 나서는 게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일렀다.
"대신, 위험에 빠지면 기꺼이 좀 구해러 와줘. 내가 피를 흘리고 있으면 시테온, 네가 나를 주문으로 치료해주겠지"
시테온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냐, 그럴 일은 없도록 해야지.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거야 로이딘."
로이딘이 주먹을 살포시 쥐고 바위 틈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캠프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쭈그려 앉던 루네와 시테온은 바위 뒤에서 조용히 로이딘의 뒷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투 수도사로써 나서게 되었지만 "생포되어 죽게 되면 어쩌지?"란 마음이 계속 들던 로이딘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가 거의 캠프에 도착할 때쯤에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경비병들은 걸어오는 로이딘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그들이 소리쳤다.
"이봐 거기 멈춰!"
로이딘은 "아! 죽었구나"하고 쿵쾅거리는 심장과 함께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헌데 경비병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닌 엉뚱한 교차로 서쪽의 다리에서 건너 캠프로 오는 정체 모를 사람 때문에 소리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마차를 끌고 앞 좌석에서 말 두마리를 앞 세워 오고 있는 마부였다.
72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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