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72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장편소설 빛의 여정 72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부정한 것들. 이런 괴물을 본 적이 없으니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진짜로 죽을까 봐 나는 염려하고 있다." - 성 아나트라-
얼마 남지 않은 피를 쥐어 짠 절망의 추종자는 핏빛 늑대가 물어온 신선한 시체를 기꺼이 받아들었다. 동굴 내에 마련한 작은 제단에서 피로 물든 그릇에 고이 정화된 피를 모아 하늘로 올려드리면 제 주인이 받을 것을 알고 기뻐한다. 날선 검이 하도 가르고 가르다 뼈에 매번 닿다보니 이제는 날이 빠진 지 오래라 어딘가에 다시 날을 갈아야 했지만 무딘대로 즐기고 있었다.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시체더미가 가득하고 뼈로 가득한 제단에 홀로 추종자가 서 있었다. 이들이 한 둘이 아닌 대륙 전체에 퍼져있으니 희생자는 얼마나 많은 걸까? 절망은 미소를 지어보낼 것이다. 황홀경 속에서 절망께서 주시는 말씀은 그들에게 확신을 더하게 했고 홀로 보내는 동굴 생활에 다시금 생기를 돋구어 주었다. 아! 신선한 육체여 이리로 오라, 아! 신선한 피를 어서 가져오라 늑대여.
살점을 취하는 핏빛 늑대는 그렇게 얻어 맞고 베이고 찔리고 화살에 박히면서도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보상의 열매를 얻으며 제 육신을 돌본다. 이미 정상적인 동물의 육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한 몸은 다른 몸으로써 온기와 힘을 얻는다. 점점 다시 털에 윤기가 돌기 시작하고 치명적인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배가 부른 늑대는 제단 밑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잠을 취하거나 애교를 부린다. 절망의 추종자는 제단에서 힘을 쏟고 나면 늑대를 만져 줄 힘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충성스러운 야수를 그래도 간혹 쓰다듬는다. 이 와중에 몇몇 시체가 절망이 추종자들에게 준 축복으로 되살아나 등에서 날개가 뻗어나와 날기 시작하면 이전의 자신과 같은 희생자를 찾기 시작한다. 이들은 살아있는 역병 그 자체였다. 간혹 대륙 곳곳에 숨겨진 절망의 추종자 동굴이 주민들에게 발견되고 경비대가 출동하게 되지만 언제나 그렇듯 깜깜 무소식으로 끝나버린다.
박쥐시체들이 숲에서 마주친 경비대와 맞서 싸우면서 본래 인간이였던 육체 껍데기에 부정의 생기가 돌아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는 경비대들에 의해 부정의 생기가 끊기면 급격하게 힘을 잃고 죽어버린다. 이때 마지막으로 경비대 병사를 끌어안고 최후의 날갯짓을 한다. 위로 솟구쳐 나무들 보다 더 높게 날아오르다 생기가 다해 떨어지면서 공중에 띄운 병사와 공멸한다. 아수라장이 된 숲 속은 날개 없는 인간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하고 박쥐시체들은 끈질김 하나로 버티다 제 역할을 마친다. 이 때 절망의 추종자는 전투가 승산이 있다 치면 제단에 공급 할 재료들로 기뻐 손바닥을 비비며 구경하고 있지만 박쥐시체가 시간만 벌어줄 것 같다 치면 그 시간 안에 간단한 짐만을 챙기고 도망을 친다. 제단은 알아보지 못하도록 부수어 뜨리고 간혹 불을 지르고 도망을 치기도 한다. 만약 핏빛 늑대가 사냥에서 돌아와 동굴에 머물고 있었다면 박쥐시체들에게 보내어 도망 칠 필요 없이 싸움 구경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정의 소산은 핏빛 늑대와 박쥐 시체로 끝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부정의 생기가 넘치고 피조물들이 쓰러지니 절망은 더욱 힘을 얻고 뜻에 맞는 섭리를 펼치기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아나티리캄에서 일어나는 탄압과 일방적인 학살은 절망의 추종자들에게 재료 수급을 원활히 해주고 있었고 아보의 형제들이 생매장을 하거나 그냥 매장터에 대충 시체를 가져다 던졌기 때문에 가져오기가 과자먹듯 쉬웠다. 눈치 없는 쓰레기들이 자기네들 교리에 경도되어 재료들에게 화형을 시키는 날이면 육체가 남아나질 않거나 아예 재로 사라져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아보의 형제들은 자기네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그걸 지켜보는 절망의 추종자는 희열과 만족감에 진저리가 쳐졌다.
아보의 형제들이 아나티리캄에서 시체더미를 만들고 있으니, 추종자들은 절망의 계획에 보탬이 되는 절호의 기회로써 이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단추적대원들과 교단의 병사들이 아나티리캄 전역에 심문소를 차리고 즉결 심판을 남발하면서 파사니만과 그의 간부들은 디고의 대신전에 실적 보고를 하기 바빴다. 파사니만은 추적대원들이 지역에서 전투와 저항으로 죽어나가고 있음을 인지한 후 대주교에게 추가 보고를 했는데 터무니 없는 답변이 다시 날라왔다.
"열성적이며 동시에 잘 싸우는 신자를 대원으로 임명하라"
파사니만은 추적대원으로써의 자존심에 살짝 금이 가 기분이 나빴으나 간헐적인 저항으로 소모되는 인력난으로 어쩔 수 없이 광신적인 신자들을 선별해 추적대원으로 임명해 활동하게 했다. 이들은 추적대원의 본질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고 단순히 똬리를 튼 덩쿨을 머리에 얹어 기도 해준 것을 큰 특권으로 여기고 있었다. 전투의 자세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지만 잔인성만큼은 기존의 추적대원들에 버금갔다. 기존의 추적대원들이 미처 파견나가지 못한 곳곳에 이들 "명예 추적대원"들이 나서서 검문을 하거나 이단 심문을 했다.
73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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