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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의 여정 73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73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73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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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가 달려오자 즉시 캠프의 입구에 서 있던 경비병들이 막아섰다. 그들은 손을 앞으로 제치며 신호하면서 한 손에는 창을 들고 달려왔다. 이들은 갑옷을 어디서 주워 맞췄는지 모를 정도로 허접했고 투구는 찌그러져 있었다. 마부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경비병들 바로 앞에서야 말을 멈춰 세웠다. 경비병들이 마부를 한번 바라보다 그의 뒤에 있는 수레로 다가갔다. 티끌 조차 보이지 않는 빈 수레에 다소 실망하여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

"동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는 마부의 답변에 귀찮아진 경비병이 다시 물었다.

"아니, 정확히 어딜 가고 있느냐 말이야"

"집을 향해 가고 있습죠"

순간 경비병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누가 당신 집을 물었나? 말 귀를 못 알아 먹는거야?"

로이딘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 광경을 몰래 바라보고 있었는데 상황이 점점 험악해짐을 느꼈다. 홀연히 나타난 마부는 자세나 표정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말이 끄는 수레에 앉아 경비병들의 물음에 답했다. 그런데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았는 지 경비병이 손 짓을 하며 말했다.

"말에서 내려! 네놈은 조사를 좀 받고 가야겠어"

마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수상함이 점차 확신이 된 경비병 두 명이 창을 꼬나쥐고 앞으로 내세우면서 명령조로 다시 말했다.

"당장 내리지 않으면 체포하겠다!"

가만히 두 병사를 지켜보던 마부가 입을 뗐다.

"혹시 수레를 확인 해보셨습니까?"

그게 뭔 소리인 가 싶던 경비병들이 마부 뒤의 수레 안을 다시 보니 무언가가 놓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빈 공간 그 자체였던 빈 수레에 거대한 뿔나팔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때 마부는 말들의 고삐를 부여잡고 있는 있는 힘껏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뒤 수레 안, 뿔나팔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땅을 진동시킬 정도의 나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 경비병들이 본능적으로 귀를 막으면서 창을 놓쳤다.


소리 덕분에 캠프의 모든 사람들이 입구를 바라보게 되었다. 마부가 경비병과 나무 울타리를 넘어 캠프 밖에 숨어 있는 로이딘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부를 멈춰 세웠던 두 명의 경비병이 저 멀리 떠나가고 있는 수레 뒤를 쳐다보며 귀를 부여잡다가 소리가 그치자 소리치며 캠프에 알렸다.

"도주자가 있다! 놈이 도망친다!"

캠프 안쪽에서 작은 종이 수 차례 울렸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일사불란하게 병사들이 캠프에서 쏟아져 나오며 마부를 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타고 달려가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단 추적대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마부는 순식간에 입구를 스치며 쫓아오는 병사들에 닿을 듯 말듯 하며 지나가버렸다. 주의가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캠프 내 사로잡힌 사람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밖의 상황을 바라보려 했다. 나무 창살로 어떻게든 고개를 내밀거나 최대한 가까이 얼굴을 붙여 바라보려 하는 사람도 있었는 데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이 제지하며 밖을 보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

"물러나! 물러나라고!"

발로 쫓던 경비병들은 도주자가 말을 끌고 가는 터라 한계가 있어 말을 타고 쫓아가는 추적대원들에 할 일을 넘긴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여러 명의 추적대원들이 뒤에 꼬리처럼 붙은 마부는 속도를 높이며 캠프를 돌아 로이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로이딘은 이 상황을 바라만 보다가 갑자기 자신을 숨겨주고 있던 앞의 큰 바위에서 빛이 나는 글씨가 나타남을 보고 크게 놀랐다. 크리네스 만신전 때에 이후로 정말로 오랜 만에 보는 피데라의 메시지였다.

"내가 따돌리테니 너는 가서 사람들을 구하라"

로이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급히 다시 고갤 돌려 소란스런 추적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미동도 하지 않던 마부가 로이딘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고 모자를 벗어 여유있게 반가움의 표시를 지어보이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왼쪽으로 로이딘을 뒤로 한 채 쌩하며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먼지 구름을 일으키고 달려오는 추적대원들이 그 뒤를 바싹 쫓아갔는데 바위 뒤에 숨은 로이딘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한 로이딘이 잠시 망설여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 빛나는 글씨가 그를 재촉했다.

"로이딘, 얼른 가서 그들을 구해라"

로이딘은 눈을 깜빡이고 정신을 부여잡은 채 앞으로 향했다. 캠프는 경비병들만이 남아있었고 이 조차도 마부를 쫓아 흩어져 병력이 산개되어 있었다. 로이딘이 캠프로 달려가자 흩어져있던 경비병 중 한 명이 그를 보고 놀라 창을 움켜 쥐고 공격을 하려했다. 그간 매일 같이 똑같은 훈련을 하던 로이딘이 제 아무리 긴장을 했어도 단순한 움직임에 당하진 않았다. 그는 창을 서스럼없이 비켜 흘리더니 방패로 경비병의 머리를 세차게 쳐버렸다. 그러자 병사가 영혼이 빠져나가버린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처음으로 적을 쓰러 뜨린 로이딘은 쓰러진 병사를 주저하며 바라보지도 않은 채 본격적으로 전장이 된 캠프 안으로 곧장 향했다.


다른 병사 몇 명이 입구에서 지금 일어난 상황들에 대해 구경하다가 로이딘을 마주해야만 했다. 한 병사는 창을 두 손으로 잡고 휘두르려 했으나 다른 병사가 로이딘에게 붙잡혀 방패막이 되는 바람에 주저하다가 진달라가 만들어준 도끼로 얻어맞고 쓰러졌다. 붙잡힌 다른 병사는 벗어나려 애쓰다가 캠프 망루에서 날아온 아군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망루가 캠프를 사각형으로 둘러싸 꼭지점에 하나씩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궁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망루는 로이딘이 몰래 들어가 무력화시킬 예정이었지만 대놓고 쳐들어가는 상황이라 위에서 지켜보는 궁수들 때문에 위험해졌다. 로이딘은 순간 육감적으로 주문을 써야 할 시점인가 싶었으나 화살 한 발이 날아와 그의 앞 망루, 궁수의 목을 정확히 맞추어 쓰러뜨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루네가 쏜 것이리라 파악한 로이딘은 안심하고 다음 목표로 향했다.



74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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