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할아버지_

거여동 꼬마의 추억

by 자백





나는 할아버지를 기억해 낼 수 없다. 어딘가에 남아있을 그 어떤 시간적 정서적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있을 할아버지의 추억 정도는 나와는 먼 일이다. 그런 나에게 비교적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 할아버지가 있다.


90년대 초, 나는 '장미연립'이란 곳에 살고 있었다. 반 지하였지만 비올 때 물 들어오는 거 빼고는 나는 좋았다. 그때의 서울은 개발이 한창이었고, 하루아침에 뒷동산이 허물어지고 논밭들이 사라지는 시기였다. 그 논밭에는 여러 주인이 있었지만 절대 가면 안 되는 곳도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주인을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언제나 우리는 신이 나있었고 막대기 하나씩 들고 이곳저곳 들쑤시며 나름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그날도 역시 그랬다.


무더운 여름, 한창 개구리 사냥을 하고 있을 때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잠시 후 형들이 뛰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나도 그냥 뛰었다. 정말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나만 잡히고 말았다. 아!! 그 ‘호랑이 할아버지’였다.


아! 호랑이 할아버지..

무서웠다. 큰 소리로 형들을 불러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그중에 2살 위인 친형도 있었다. 개쌔기!)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다. 자신의 영역표시를 해놓은 호랑이는 먹잇감을 포착되면 낮은 포복자세로 슬금슬금 기어와 이때다 싶을 때 사냥을 한다. 누구의 영역에 들어온지도 모른 채 풀을 뜯고 있던 나는 어린 고라니였을까. 그날 나의 손바닥은 붉은 피로 흥건했고, 아마 호미 같은 걸로 그러지 않았을까 기억해 본다.


왜 그랬을까?

무단침입 한 그 누구에게라도 이곳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응징이었을까? 아니면 힘에서 밀려 쫓겨나는 늙은 우두머리의 슬픈 표효였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무서웠던 기억은 한 번쯤 떠올려지는 추억이 되었고, 그 사건 이후 몇 달이 채 되지도 않아 그곳도 사라졌다. 그 호랑이 할아버지의 모습 또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어릴 적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수도 없이 사라지는 논과 밭을 보았다. 우리에게는 늘 놀이터가 되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오랜 시간 함께한 흔적들이 사라질까 하는 안타까움과 허탈감으로 가득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어느새, 젊은 중년의 모습으로 어린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겨 뭔가 기분이 좋다. 그 행복한 고민 끝에는 삶의 무게에 한 없이 움츠려 들지만 나 또한 언제 가는 우리의 소중한 영역을 지키기 위해 '호랑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 그랬을까?
아마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keyword
이전 07화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