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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띵 Oct 20. 2022

빨간 구름과 긴 이야기

모든 인생에 없는 딱 한 가지, 정답

  아이와 산책하며 즐기는 놀이는 '구름 관찰하기'이다. 우리는 공원 정자에 앉아 파란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 쾌청한 가을 하늘에서 토끼 꼬리처럼 동그랗고 보들보들한 흰 구름들을 바라보았다. '어쩜 저렇게 파랗지? 저렇게 떠 있는 구름을 뭐라고 부르더라?' 여러 가지 생각들을 굴리며 고개를 젖히고 있던 내게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빨간 구름은 어디에 있느냐고. 예상치 못한 물음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대답할 거리를 찾아내었다.


"아! 빨간 구름은 해와 달이 교대하는 시간에 볼 수 있을 거야. 그땐 빨간 구름 옆에 주황색, 노란색, 분홍색, 어떤 때엔 보라색 구름도 같이 보인단다."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아이는 미소를 살며시 짓더니 정자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한껏 힘주어 두 팔을 앞뒤로 저으며 색깔 이름을 연신 읊으며 집으로 향했다.

만약 엄마가 되어보지 않았더라면 빨간 구름 같은 건 없다며 일침을 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이 아이에게 하루 중 얼마나 긴 슬픔을 안길지 감히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정답이 아닌 듯했던 것도 누군가에겐, 또 어떤 때엔 내게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빨간 구름이 알려주었다.




  출산하고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새벽 수유도 젖몸살도 독박 육아도 아닌, '탈 범생이'가 되는 과정이었다. XX을 글로 배웠다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난 늘 책으로든 기사로든 활자 형태를 통해 무언가에 입문하고 배우고 익히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출산 이후 잠이 그 무엇보다 중한 때에도 밤잠을 쪼개며 육아서를 읽었다. 어떻게든 개월 수에 맞춰 적혀 있는 책 속의 지침들을 아등바등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 밖에 있었다. 받아들이고 나니 정답다운 육아를 찾아 나서지 않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나날 중 다가오는 따스한 순간들이 그저 감사하고 소중할 따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갈무리 지으며 마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문득 어린이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엄마랑 떨어져야 하는 어린이집은 싫다는 듯 울먹이며 품에 안기던 아주 작은아기였는데, 내년부터 가보겠냐는 질문에 냉큼 그러겠다고 한다.


  두 해 남짓 동안 아이는 정말 훌쩍 자라 있었다. 그동안 아이가 말은 못 해도 얼마나 크나큰 용기를 품고 또 품어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아이와 떨어져 다시 사회로 돌아가 아이만큼 멋지게 성장해나갈 수 있을까.




  이미 벌어진 경력 단절에,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나의 진로 고민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많을 테지만, 육아에서도 그랬듯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몸소 배워온 2년여의 시간이 내게 스며들어 있다.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아가는 인생의 유일한 정답. 전인미답의 인생 앞에서 명백한 옳고 그름은 존재할 수 없을 다는 것. 그러니 순간의 선택을 ‘나만의 정답’이 되게끔 만들어가는 몫만 남는다. 우리 아이가 그랬듯, 내 안의 벽을 넘어설 용기를 품고 그 크기를 키우다 보면 훗날 '나'다운 사람이, '우리 엄마'다운 사람이 아이 곁에 서 있을 거라 믿어본다.

조잘조잘댈 수 있는 그 날까지,


  노을 지는 시간의 불그스름한 구름은 앞으로도 내게 기나긴 이야기를 들려달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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