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떠나올 것
이상하게도 그간 이사 다닌 지역들을 떠올릴 때마다 이사 나가는 날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그려진다. 차 한 대도 지나갈 수 없게 살던 집 앞을 꽉 차지하고 있던 6톤짜리 이삿짐 트럭과 빨간 사다리차의 모습. 그게 내가 그곳에서 지내온 시간을 대변해주는 순간이 되어버린 듯하다.
잠시도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신나게 웃고 떠들었던 기억도 있을 텐데, 떠나온 곳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리고 있자면 이상하리만치 꼭 이삿날이 떠올라버린다. 새로운 집에서 짐을 풀고 다시 그 짐을 쌀 때까지 나는 ‘이사’, ‘떠남’, ‘마지막’이라는 단어들에 촉을 세우고 지내오나 보다.
짧으면 1년 미만, 길면 2, 3년 지내다 가야 한다는 걸 알아서일까. 다가오는 새로운 풍경에도 인연에도 좀처럼 마음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떠날 즈음되면 마음의 문이 덜컥 열려버려 마음이 뭉그러지곤 했다.
이곳에서의 산책길이 익숙해지고 이곳에서 만난 엄마들, 버스기사님, 할머님들이 친근해졌던 순간,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놀이터로 뛰어나오는 시간 오후 4시 반이 기다려지던 순간, 반가운 마음과 비례해 밀려오는 씁쓸함은 막으려 해도 막아지지 않았다. 우리 집보다 먼저 이사 나가는 윗집 언니네를 잘 가라며 눈물 없이 보내줄 자신이 없어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빵집으로 마늘빵을 사러 갔던 적도 있었고, 산책하다 마주친 아랫집 분과 연락처는 주고받아도 잘 들어가셨냐는 선톡은 차마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정드는 게 무서웠다.
피하고 싶은 일들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 않나. 이사 나갈 준비는 보통 5일 전쯤 벼락치기로 해치우곤 했다. 이사는 곧 이별, 이별은 곧 두려움이었으니 이런 감정을 느낄 시간을 줄이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했다. 짧게 묵은 집인데도 묵힐 대로 묵혀진 심란한 물건들은 내 마음도 모르고 왜 그리도 많던지. 하루는,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양손 무겁게 짐을 들고 나와 분리수거장으로 옮겨 나르고 있었다. 그러다 피하고 싶었던 질문이 날아왔다.
“언제 이사 가세요?”
아… 웃는 이모지 뒤에 아쉬운 마음 숨긴 채 문자로 전하려 했는데. 얼굴을 보이고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만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이사 나가서, 주말에 이사 나가서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이지 못하고, “다음주 일요일 아침 일곱 시요.”라고 했던 나. 그 순간 차갑게 경직되었던 입고리의 느낌은 아직도 나를 작게 만든다. 그리도 정을 나누고 사이좋게 지내놓고 살가운 말 한마디를 못하다니, 모지리도 그런 모지리가 없었다. 풀리지 않을 그리움을 굳이 눌러 담아야 했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잘 헤어지고 싶다. 도망치듯 말고 정중하고 성숙하게 인사를 건네면서.
지금 지내고 있는 이곳도 두어 달 뒤에는 떠나야 한다. 이사를 앞두고 이전과 달라진 건, 이사 준비를 세 달씩이나 이르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첫번에도 그랬고 두 번째에도 그랬듯, 이번 역시 크게 달라지지 못한 마지막을 남기게 될 것 같아서이다. 또다시 떠나온 곳을 떠올리면서 가장 먼저 끄집어낼 장면으로, 무지막지하게 크기만 해서 더욱 쓸쓸하기 짝이 없던 이삿짐차의 뒷모습밖에 없진 않았으면 한다. 담담하게 인사 나누며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고 싶다. 조금 서툴겠지만 넉살도 조금 보태면서.
모든 짐이 비워진 집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에, 그동안 감사했던 마음과 앞으로도 계속될 진심 어린 응원을 오래도록 담아둘 수 있길 바란다. 이별의 한순간에 영원이 깃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