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적 며느리 시점
마카롱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다. 나를 위한 선물로 많이 만들어서 원 없이 먹기 위해서였다. 열과 성을 다해 프렌치 마카롱을 구웠지만, 내 손맛이 입맛을 못 따라가 주는 바람에 강의실을 나오면서 다짐해야 했다. 프렌치고 뭐고 마카롱은 사 먹기로. 어쨌든 그날 나는, A4용지 한 페이지 분량의 마카롱 레시피가 주는 뿌듯함만은 얻어 왔다.
마카롱 구웠을 때처럼 노력이 의지를 따라가지 못한 경우가 또 하나 떠오른다. 결혼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 시댁과의 관계이다. 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마카롱 한번 구워보아야겠다. 결혼 4년 차, 과도기적 며느리 시점에서.
<며느라기 마카롱 만드는 법>
1.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주세요.
시부모님을 마주하고 있으면 흰자만 남은 달걀이 된 것 같다. 진짜 나인 노른자는 잠시 다른 곳에 두고 온 기분.
2. 흰자에 설탕을 3번에 나눠 넣으며 핸드블랜더로 머랭을 쳐주세요.
우리 시부모님은 객관적으로도 설탕처럼 다정하신 분들이시다. 외출하실 때에도 며느리 힘들지 말라고 저녁 준비까지 전부 해놓고 나가신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다. 시댁에만 들어서면 그날 하루는 정신없이 휘몰아쳐 지나간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잘 쳐진 머랭처럼 뾰족하게 뿔이 선 나를 발견하곤 한다.
3. 아몬드 가루와 슈가파우더를 체에 곱게 걸러 주세요.
시댁에서는 속으로 삼키는 말이 늘어난다. 정말 사소한 부분에서도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집에 갈 때 가져가라고 챙겨놓으신 짐을 보고, 과일은 집에 많으니 조금만 가져가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 아무래도 내 목구멍 안에는 아주 촘촘한 거름망이 있는 모양이다.
4. 준비해둔 머랭과 체 친 가루를 섞어주세요. 쫀득한 마카롱 만들기의 성패는 바로 이 ‘마카로나주’ 단계에 달려 있습니다.
성공적인 마카로나주를 위해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점은, 골고루 섞으려고 치덕치덕 치대는 것이 아니라 머랭을 끊어주듯 섞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말이니 이해는 하겠는데, 반죽통에 실리콘 주걱을 담그자 손이 얼어버렸다. 해본 적이 없어, 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번 반죽 상태가 다른 것처럼 시부모님과의 관계 역시 늘 같을 순 없었다. 문제는, 멀게 느껴지는 날 며느리로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충분히 흘려들을 수 있었던 말씀 하나에도 며칠이고 곱씹으며 스스로 만든 오해 속에서 질척거리기도 했고, 아니면 너무 흘려듣고 만 탓에 내가 만든 오해를 나만 몰랐던 적도 있었다.
마카로나주가 잘 된 반죽은 매끈하게 윤이 나며 위에서 아래로 떨어트렸을 때 계단 모양으로 쌓인다고 한다. 뭐든 적당한 비율로 배합되었기에 떨어지더라도 철퍼덕 뭉개지며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형태를 지키며 아래 것 위에 켜켜이 자신을 쌓아간다. 모든 관계에서 그렇듯, 어느 한 쪽이 언제나 예스맨인 자세를 취한다면 결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크고 작은 충돌을 빚더라도 우리만의 배합률을 찾아가야 한다. 이 여정은, 며느리와 시부모님 양측이 모두 나다워질 때 시작될 수 있다. ‘솔직‘하되 ‘선‘ 넘지 않으며 ‘나’다워져 보자. 가족 간에도 정성 들인 마카로나주가 꼭 필요하다.
5. 짤주머니에 반죽 넣어 둥글게 짜주고, 적당히 말린 뒤 예열한 오븐에서 구워주세요.
오븐 틀 위에 짜낸 반죽을 충분히 건조하지 않으면 꼬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쫀득하지 못한 뻥카롱이 나와버린다. 성공적인 마카로나주 뒤엔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전과 달라진 모든 관계에서 차분히 굳히는 단계가 필요하듯이. 조급한 마음이 들더라도 이 과정을 거치고 나야 더욱 탄력 있어 매력적인 마카롱을 맛볼 수 있다.
6. 맛있게 드세요!
좌충우돌 며느라기의 과도기를 잘 지나온 뒤엔, 마카롱 멋지게 구워 선물해드리고 싶다. 프렌치식 마카롱으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