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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소민 Nov 06. 2024

불안한 템포

7장

서현이 단장이 된 후, 유진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서현의 눈빛에는 이전과는 달리,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한 사람처럼 뚜렷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연습 중에도 서현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자연스럽게 우월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유진은 오히려 안도했다.


‘서현 선생님은 10년 넘게 이 오케스트라에 있었고, 나는 이제 겨우 1년이니 당연히 내가 뒤에 앉는 게 맞지.’


그녀는 서현의 새로운 위치 덕분에 더 이상 자신이 견제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서현은 이제 단장이 되었고, 세컨 바이올린 1풀트 in 자리에서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그런 서현이 더 이상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연주에만 몰두할 것이라는 기대가 유진을 조금씩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현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졌다. 연습 중에도 여유롭던 표정은 사라지고, 불안한 기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현은 단장으로서, 세컨 바이올린 1풀트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야 했지만, 유진의 활을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그녀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특히 수석이 결석하는 날이면, 서현은 더욱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풀트 in 자리에 앉아 홀로 연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커지면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연주해야 하는 순간에도, 서현의 눈은 자꾸만 흔들렸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떨림은 그녀의 불안을 더욱 드러냈다.


유진의 활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에, 서현은 연주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동안 유진의 활을 힐끔 보며 안도하던 시간이 얼마나 컸던지, 이제는 그 도움 없이 혼자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그 책임감은 마치 연습실을 가득 채운 공기처럼 서현의 어깨를 짓눌렀다.


서현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수석님이 안 계셔서 오늘 세컨 바이올린은 소리가 안 날 것 같네요.”


그 말은 연습실 안을 가로질러 울려 퍼졌고, 단원들은 모두 잠시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현의 말은 분명 유진을 겨냥한 압박이었다. 그 한마디는 마치 유진에게 소리 내지 말라는 묵직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서현은 다른 단원들에게도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 속에는 떨림이 숨어 있었다.


유진은 그 말을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작은 긴장감이 일었지만, 그녀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연주에만 집중하려고 애썼다. 활을 들어 올리고 강하게 연주를 시작하자, 바이올린의 울림이 연습실 가득 퍼졌다. 마치 그 순간에 모든 집중을 쏟아부으며 서현의 존재를 무시하려는 듯, 유진은 활을 더 힘차게 움직였다. 악기에서 나오는 선율은 맑고 힘이 있었고, 그 소리는 마치 유진의 결의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유진의 안정된 연주와는 달리, 서현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가야 하는 서현의 움직임은 느리게 이어졌고, 유진의 활을 참고하려는 시도는 예전만큼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자꾸만 유진의 방향으로 기울어졌고, 활의 움직임을 힐끔거리는 모습이 더 빈번해졌다.


서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지만, 그럴수록 연주는 더 불안정해졌다. 그녀는 한 번 더 유진의 활을 보려고 몸을 틀었지만, 그 순간마저도 불안정했다. 활의 떨림이 고스란히 소리로 드러났고, 연습실 안에 있는 사람들마저 그 미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현의 연주는 갈수록 흔들렸고, 불안감은 연습실 전체에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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