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청춘 예찬
나는 섬(#신안군 #도초도)에서 태어났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 산에 오르면 ‘언젠가 섬을 탈출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마침내 목포시에서 고등학교, 광주광역시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섬을 떠났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42년 동안 대한민국 교원을 역임했다. 2021년 2월, 정년퇴임을 하고 현재 한국어교원으로 1년에 6개월 정도 중도입국자녀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교육, 기초학력지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 인생 ⅔를 학생 교육하는 일에 헌신했다. 이는 참으로 유의미했고 보람 가득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늘 가난했다. 가난으로 점철된 우리 집 형편은 7남매 장남인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한시도 맘 편히 지내지 못했다. 늘 외로웠고 맘 졸였으며, 가난에 찌들러 어려움 겪어야 했다. 부모님의 일을 분담하는 일, 동생들 뒷바라지하는 일은 내 나이 25살에 얻은 아들 교육에는 뒷전이고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아내마저 깡그리 희생시켜야만 했다. 내 아내는 나와 마찬가지로 40년 동안 대한민국 교원이었다.
자연스레 내 사랑스러운 아내(이후 J로 칭함) 이야기로 글을 옮긴다.
J와의 만남은 특이하다. 내가 대학 시절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내려오는 길에 빗물에 젖은 편지를 주웠다. 편지는 이미 개봉된 상태였다. J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인데, 수취인이 ‘기꼬마(O숙)’였다. 성이 ‘기’ 가였고, 키가 작았는지 이름은 ‘꼬마’라고 썼다. 슬쩍 미소 지으며 편지를 가방에 넣었다. 한 달 후 였을까? 나는 J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런 인연은 내 나이 24살 때 처가 반대를 무릅쓰고 가슴 아픈 결혼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장모님께서 너무 온화하고 다정스러웠다. J는 똑똑했고, 마음 씀씀이가 좋아서, 기필코 내 인생의 평생 동반자로 함께 하고 싶었다. 어느 누가 반대해도 나는 꼭 J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랬다. 지금까지 나는 J와의 결혼을 후회한 적 없다. 오히려 커다란 행운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최고의 축복을 주셨다.
J는 내가 보낸 편지를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45년 지난 편지 속에는 나의 처절했던 청춘(靑春), 가난한 시절의 외로움과 J에 대한 연모(戀慕)의 심정이 알알이 새겨져 있었다. 20대 뜨거웠던 내 청춘의 가슴 시린 이야기와 그 당시 무작정 J에게 달려갔던 내 마음은 초로(初老)의 고갯길에 서 있는 내게 또 젊음을 소환해 준다.
그래서 한편, 한편 편지를 소개하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