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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Dec 15. 2022

나도 계란 먹을수 있어?

오늘은 계란 유발검사 가는날이다

오늘은 아들 계란반숙 유발검사가 있는 날이다. 


나는 오늘 아들의 계란반숙 유발검사를 위해 하루 연가를 냈다

검사 장소는 부산 고신대 복음 병원이다. 승용차로 2시간 남짓 걸린다

유발검사를 시작하면 검수중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검사 2시간 전에는 뭐라고

먹어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 질수 없다.

평소 보다 이른 새벽 6시, 아들을 깨운다. 심하게 보챈다.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 다시 일으킨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수 없다. 이러다 힘들게 잡은 유발검사를 시작도 못할지 모르는 일이다.

차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아들에게 아침으로 만두를 꺼내서 내민다. 하지만 먹지 않는다.

할수 없이 그냥 출발했다.

잠에서 덜 깨 입이 툭 튀어나온 아들, 뒷좌석 카시트에 탄 아들에게 만두를 먹일 방법이 없었다.

아들이 보채면 히든카드로 가지고 있을 영상을 미리 꺼내들었다. 드디어 아들은 만두를 먹기 시작한다.

히든카드를 너무 일찍 썼다. 오늘의 험난한 여정이 예상됐다.


오늘따라 내비게이션이 늘 안내하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안내한다. 부산에 도착하니 아침 출근길과 겹쳐 차가 많이 막히기 시작한다. 일찍 출발한다고 했는데 시간이 간당간당하다. 마음도 점점 조급해진다

네비게이션에 도착시간이 진료시간 5분 전인 8시 55분이다. 여유가 별로 없었다


도착 10분 전


아들에게 영상을 끄고 내릴 준비를 하라고 미리 알렸다.

다행이 보채지 않고 영상은 쉽게 껐지만, 갑자기 쉬가 마렵단다. 그것도 '급쉬'란다.

차는 도로 한가운데 서서 병원 입구로  들어가는 신호 대기 중이다.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바쁘다. 바지에 싸면 오늘 진료를 볼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을 조린다.

주차장안에 대충 차를 세우고 아들에게 적당한 장소를 찾아 주차장 기둥에서 쉬를 하라고 했다.

아들은 여기서 싸면 안 되니 다시 주차장 밖으로 내려가자고 떼를 쓴다.

나는 차를 다시 돌릴 수도, 그대로 주차하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었다.

아들의 쉬가 얼마나 급한지도 몰라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급한 김에 차 안에 있던 물통을 아들에게 꺼내서 주었다.

징징거리더니 물통안에 오줌을 쌌다. 금새 물통이 넘쳐 손에 묻었다.

아들은 오줌이 마려웠지만 영상을 보는 내내 참았던 것 같았다. 갑자기 화가나서 욱한다. 욕이 나온다

나도 사람인지라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계에 부딪칠때면 한없이 나약함을 느끼며 자책한다.  

더 화를 낼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없다.

이미 진료시간에 늦어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아이를 들쳐없고 무작정 달렸다.

그런데 주차를 이런식으로 하면 안된다며 차를 똑바로 주차하란다.

일단 병원 진료실부터 찾았다.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진다.


드디어 진료실 앞에 도착했다.

오늘 유발검사는 계란반숙,  얼마전 실패한 경험이 있어 오늘이 벌써 2번째 도전이다.

계란 반숙이 통과되면 시중에 파는 계란말이, 계란찜, 마요네즈 등 각종 소스류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시간이다.


유발 검사는 총 4차례( 4g, 8g, 10g, 100g,)에 걸쳐 진행됐다.

계란을 6분 삶은 반숙을 병원에서 미리 준비해준다

매 검사 후, 20분마다 혈압과 맥박을 체크했다. 또 몸에 알레르기성 발진같은 이상 유무를 관찰한후

다음 단계로 넘어 간다.

마지막 검사가 끝난 후에는 2시간 동안 병원에서 다시 이상 유무를 관찰하고, 의사선생님의

마지막 진료가 끝난 후에야 모든 일정이 끝난다.

그러면 보통 오전시간이 다지나고 오후 1시쯤 됐다.

아이는 배고프다고 난리다, 미리 준비해간 카레와 햇반을 근처 편의점에서 대피고

내가 먹을 김밥도 샀다, 주차장에 주차된 차안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후 또 2시간을 차로 달려

집에 도착하면 오후 5시쯤이다. 하루가 다간다

쉽지 않은 일정이다. 이런 과정을 매번 새로운 음식을 먹기위해 벌써 3년째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검사도 하기전에 아들이 계속 배가 아프다며 칭얼거린다.

매번 평소보다 이른 시간 일어나서 피곤하기도 하고, 아침부터 보채서 아빠한테 욕도 먹어서 그렇겠지 하며 달랬다.


1차 검사(4g)을 시작했다. 목이 따갑고 속이 울렁거리며 배는 더 아파졌단다.

아이의 말 이외에 혈압과 맥박은 정상이고, 몸에는 별다른 발진이 없어 2차 검사를 시작했다.

2차 검사 (8g) 시도, 목은 계속 따갑고 울렁거림이 심해졌단다. 배도 더 아프단다.

보통 이런경우 진짜 아픈건지 알레르기 때문에 그런건지 햇갈린다.

"아들 응가한번 해볼까? 화장실에 들어간 아들은 응가를 아주 오랫동안 많이 했다.

똥이 마려워서 그랬구나, 이젠 괜찮겠지 하며 3차 검사를 시작했다

3차 검사 (10g) 시도,  다른 증상은 좋아졌고, 배가 더 아파졌단다.

마지막 한번의 검사를 남겨두고 검사를 더 진행할지말지 의사와 상의했다.


간호사는 아이의 표정이나 상황을 봐서 그만했으면 하는 눈치였고,

나는 힘들게 왔으니 할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의사는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말했다

"한번 남았는데 더해보죠, 반응이 있으면 치료를 하면 되니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한번 더 해봐요"


이제 한번남았다. 한번만 더 먹으면 계란 반숙이 통과됐다

통과되면 그동안 못먹었던 새로운 음식들을 엄청 많이 먹을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기 때문에 나는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계속 배가 아프단다.

4차 100g시도 위해 검사실에 들어서자 아들이 배가 더 심하게 아프단다

아들이 입을 벌리고 계란을 먹어서 삼켜야 하기때문에 억지로 검사를 할수는 없는 일이다

좋아하는 영상이나 과자로 꼬셔도 효과가 없다. 진짜 아프구나 싶었다.

일단 검사를 중단하기로 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힘들어하며 자꾸 누우려고한다.

다시 검사실 침대에 눕혔더니 계속해서 못참겠다며 통증을 호소한다.

할수 없이 의사와 상의해서 급성알레르기 반응시 응급조치인 젝스트 주사를 놓았다.

아들은 주사를 맞자마자 배가 안아파졌다고 했다.

검사내내 아들의 반응이 햇갈렸지만, 주사를 맞고 바로 괜찮아진걸 보니 알레르기 반응이 맞구나 싶었다


생각건대, 두 달 전 실패한 계란 반숙 유발검사에서 0.5g 먹고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했던터라

계란반숙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기전부터 하기 싫고 두려웠지만

기대에 부풀어 있던 엄마와 아빠 때문에 안하겠다는 말을 못했던 모양이다.


그런 아들에게 인성의 바닥을 보이며 짜증 내고 화를 냈었다. 갑자기 미안함이 몰려온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안 할 순 없다. 더 이상 약해지면 안 된다

마지막 진료시간 의사선생님은 그래도 이번 계란반숙 테스트를 통해 이정도면

집에가서 계란말이, 계란찜, 계란국 같은 것은 시도해봐도 될것 같다는 희망찬 이야기도 들었다


아들 오늘 검사한다고 정말 고생 많았어. 잘하고 있고, 잘했어

그렇게 아들과 유발 검사를 마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다시 밝아졌다

오늘의 이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의 경험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식품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모든 부모들이여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파이팅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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