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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hoto Nov 29. 2022

커피에 진심인 남자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커피는 냉동 건조 커피만 알았다. 커피, 설탕, 프림이 아주 조화롭게 믹스가 되는 달달한 커피만 마셨다. 대학 때 카페를 가더라도 보통 아주 연하게 내려준 그런 커피가 커피의 전부인 줄 알았다. 8-90년대에는 그랬다.


 성균관 대학교 근처에 있던 유명한 커피집을 다녀보고 소개팅이나 미팅을 나가서 폼 잡고 싶어서 혹은 겉멋에 들어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의 커피를 시켜 마셔보기도 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살다 보니 에스프레소란 커피를 마셔보게 되고 커다란 잔에 나오는 카페 라테라는 것도 마셔보게 되었다. 아! 내가 그간 마셔보던 커피는 커피가 아녔구나. 그냥 달달한 설탕물 혹은 커피가 스쳐 지나간 검은색 물을 마셨구나 란 생각이 들게 되었다.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정류장 앞에 있는 카페에서 서서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 추운 겨울날 작은 다락방에서 모카 포트에서 내린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약간 과장하면 다락방 중앙에서 팔을 뻗으면 사면에 손이 닿을 정도의 작은 다락방이었다.

그런 방안에 퍼지는 커피 향.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행복한 기억이다.


주말에 밤새 놀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모카 포트에 커피를 올리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를 듣고 그 향을 느끼고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파리 풍경.


에스프레소 맛을 알게 된 나는 그 뒤로 에스프레소만 마셨다. 작은 잔에 한두 모금 홀짝 마시면 끝인 에스프레소. 그때만 해도 커피빈에 대해 전혀 몰랐다. 뭐 지금도 좋아하는 몇 개의 커피빈만 돌아가면서 마시지만.


어디를 가던지 나의 음료는 늘 커피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파리에서 마셨던 커피 맛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아주 맛난 커피집을 찾게 되었다. 내 작업실이 있던 동덕여대 정문 앞에 있던 커피집에서 그 맛을 찾았다.

그 커피집 이름은 ' 칸타타'


주인분이 직접 로스팅도 하는 커피집이었다. 작업실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

그분에게 커피에 대해 배웠다. 커피를 내리는 다양한 방법 , 빈의 종류 등등.

더치커피란 것도 그분을 통해 알게 되었고 터키식 커피 , 동남아시아식 커피 등등


작업실에 더치커피를 내리는 기구도 드립을 할 수 있는 장비들도 다 구비하고 오는 손님들에게 직접 맛난 커피를 제공하면서 즐거움도 느꼈다. 


미국에 이민을 오면서 커피 도구들을 다 처분했다.


미국 남부는 커피보다는 아이스 티를 더 즐겨마시는 듯했다. 적어도 내가 사는 지역은 그런 듯해 보였다. 맛난 커피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스타벅스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던.

문제는 아침 출근길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구입하려면 최소 20-30분이 걸렸다. 출근길 커피 한잔을 하려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몰리다 보니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커피를 안 마시고 출근할려니 뭔가 찝찝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쓰는 시간과 비용에 대해서. 

차라리 내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하나 구입해서 마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시간도 아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저렴한 (?)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했다.

커피빈을 로스팅하는 곳이 근처에 없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로스팅을 잘한다는 곳에서 주문해서 마시기도 하고 가끔 애틀란타에 가게 되면 그곳의 유명 로스팅 집에서 빈을 구입해 오기도 했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에스프레소 머신의 켜야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잘 사용하던 장비가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한다. 내가 에스프레소 머신의 관리 요령이 없었던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주고 유지 보수를 했어야 했는데 그냥 커피를 내려 마시기만 했던 것이었다.


결국 어느 날 작동을 멈추었다. 3년가량 사용했던 장비가 고장이 난 것이다. 수리를 해서 사용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듯해 보였다.


며칠 드립 커피, 베트남식 커피 등을 마시면서 버텼다. 가끔 스타벅스를 가기도 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새로운 에스프레소 머신을 주문했다. 초보자용(?) 머신을 써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사양이 조금 높은 것으로 선택했다. 다행히 무지막지한 가격은 아니었다.


지난번 같은 실수를 안 하기 위해 종종 청소도 하고 관리를 하면서 잘 쓰고 있다.




여행을 가면 밥값보다 커피 값으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틈만 나면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 구경하면서 커피를 마신다. 급하게 여기저기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보다는 그지역의 커피를 마시면서 그지역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어떤 커피빈을 어떻게 해서 마시냐 보다는 얼마나 신선한 커피빈을 내려 마시느냐가 제일 중요한 듯하다. 다행히 지금 사는 곳에는 로스팅을 꽤 오랜 기간 한 가게가 있다. 그 집에서 정기적으로 커피빈을 사서 마신다. 신선한 빈을 구입해서 갈고 내려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건 드립 커피 건 달달한 베트남식 커피 건 종류에 상관없이 행복감을 준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였다. 모카 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싶은 날.

작은 모카 포트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면서 커피 향이 집안 가득이다.


그 커피 향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준다. 나를 파리의 작은 다락방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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