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보다 아빠

by 두움큼

누군가에게 꺼내기 싫었던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영혼이 맑고 투명했던 열일곱 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어린 눈에 담은 세상은 슬픔이 더 많아서 마음속엔 항상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더구나 부모님을 떠나와 생경한 곳에서의 생활은 변화에 적응이 더딘 나에게는 조금 힘든 시절이었다.


어릴 적부터 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다 그 무렵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숨 쉴 곳! 완벽히 안전한 의지처였다.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때의 그 마음과 간절함은 진실했다.

차근차근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도사, 선교사 아니면 사모님. 확실하지는 않지만 꼭 주의 일을 하겠노라 약속했었다.




내 기도제목 1번은 엄마아빠 두 분이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기도는 안 들어주셔도 아무렴 괜찮지만 이 기도만은 제발 이뤄달라고 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엄마아빠를 둔 쉰둥이 막내딸은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애달픈 기도였다. 간절한 만큼 이 기도는 이뤄주실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안심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을 빼더라도 고등학교 3년, 성인이 된 후 3년 적어도 6년은 빌고 빌었던 기도가 외면당한 기분이 들었다. 배신을 느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차가운 이성이 또렷하게 날을 세웠다. 그리고 짐작했다. 내가 하나님을 놓을 것이라는 걸.


무슨 뜻이 있으신 건지, 이 고난의 끝에 나를 향한 계획하심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헤어릴 여유가 없었다. 정립을 해보려 해도 되돌이표였다. 그 이후로 교회에서 발을 돌렸고 기도도 하지 않았다. 그분의 뜻을 알고 받아들이기에는 나의 상심과 절망 그리고 죄책감과 회의감으로 괴로웠다. 기도할 시간에 아빠한테 한 번이라도 더 가볼걸...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나는 수련회에 참석했고, 대학교를 자퇴하고 선교사를 하겠다고 처음으로 부모님과 가족들의 속을 썩였다. 주일예배를 빠질 수 없다며 가족들과 여행도 함께 가지 않았다. 그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하나님을 믿었던 만큼 배신감이 컸고 굳은 다짐들도 물거품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라질 정도로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상처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아빠가 그립고 아프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난 믿음 약한 사람이라고 비난받을지 언정,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만한 그릇인지 시험을 하신 거라면 통과하지 못할지 언정 더 이상 그분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하나님을 사랑한 것인지, 아빠를 사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님보다 아빠를 더 사랑한 것 같다. 아빠를 잃고 아빠 품으로,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주님께서 나를 봐서라도 아빠를 조금 더 이승에 머물게 하시지 그러셨냐고, 그럼에도 인생의 마지막이 그 시점인 것은 원래 삶과 죽음이 그런 거라고, 하나님이 나보다 더 아파하고 계신 건 아니시냐고 마흔의 나이에는 이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배는 안 드리지만 하나님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인정하고 고백한다.

언젠가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숙제와도 같은 이 실타래를 풀 날이 오겠지. 꽉 닫아놓은 마음을 열고 주님을 헤아릴 마음이... 용기가 생기겠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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