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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un 05. 2023

그녀를 만나는 곳, 2코스

 # 10 올레길 2코스 230603 아침부터 후끈

직장생활의 마지막 해는 아팠다. 몸보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발행글, '36년 줄다리기의 줄을 놓다'에 마음이 지옥이었던 그 시간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어요)

 아팠던 시간에 방 하나를 1년여 시간 동안 나눠 쓴 선배랑 오랜만에 통화를 하다가 제주 여행 일정이 있음을 알았고, 우연으로 포장된 만남을 갖기로 했다. 올레길 2코스에서.


올레길 2코스는 성산일출봉을 왼쪽에 끼고 걸었다고 할 만큼 어디서 보아도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전날 장대비 속에서 희미하게 윤곽만을 겨우 보여주더니 오늘은 부끄러움은 잊은 듯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다 보여줄 기세였다. 푸른 바다 위에서 기세등등한 초록으로.

아! 성산일출봉을 오르고 싶다.

눈보다 몸으로 오르고,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 그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식산봉은 괜찮았지만 대수산봉 정상을 오르는 동안은 호흡이 힘들었다. 계속되는 오르막도 힘들었지만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모아둔 이야기보따리(직장이야기, 여행이야기, 이야기 또 이야기)를 풀어서인지 천천히 걷는 걸음도 무거웠다. 보기에도 몸이 가벼운 선배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여전히 씩씩하고 명랑했다. 제주올레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앱(올레패스 - 프로그램)을 통해 신청하고, 마음을 같이하는 이들과 전날 다른 코스를 걷고 왔다고 했다. 함께 걷는 모임은 대부분 제주도 현지인들이 가이드가 되고, 오로지 걷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같이 출발하고 같은 도착지에서 만나 헤어지는 일정이란다. 각 코스별로 걷고자 할 때 괜찮겠다 싶었다.


제2의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해 나가는 선배가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혼인지까지 가는 길은 포장된 길을 걸어서인지 지겹기도 했지만 도착시간에 쫓겨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기에 조금씩 힘들어졌다. 또,

메밀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은 여성 혼자 걷기에는 으스스했다. 선배랑 같이 걸으면서도 뒤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게 할 만큼. 뛰어난 미모도 아니고 젊은 나이가 아니라서 업혀갈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된다고 농담을 하며 걸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아버릴 만큼의 나이가 아니던가...


수국이 장관인 혼인지에 도착했지만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웨딩촬영 중인 예비신랑신부들의 반짝임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딸들도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저렇게 행복하고 예쁘게 살아갔으면, 마음이 반듯하고 다정한 사람이라 사랑을 듬뿍 줄 수 있고 몸이 건강한 사람이라 아빠랑 엄마를 꼭 닮은 아기도 셋은 낳아 키웠으면...


코스가 지루하기도 했지만 일행들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는지 걸음을 재촉받다 보니 도착시간이 빠듯했고 버스를 타기 무섭게 의자에 파묻혀버렸다.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이맘때 제주는 메밀꽃이 장관이었다
식산봉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
혼인지의 작은 연못



#올레 2코스 #광치기해변 #성산일출봉 #올레패스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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