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7 / 황혼의 어부

by BO

파블로프의 개는 종소리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침을 흘려댔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먹을 것이 보이면 반사적으로 뛰었다. 저 멀리 길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코코넛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그 리듬에 맞춰 발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짧은 시간에도 행여 다른 누군가 코코넛을 노리고 있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혹시 있을지 모를 경쟁자에게 안일함을 주기 위해 코코넛에는 조금도 관심 없는 듯 시선을 위로 올리고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한 채로 신속하게 접근해 낚아챘다. 승리다. 무심한 표정 연기와 재빠른 몸놀림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코넛 하나 주웠을 뿐인데 세상을 다 가진듯했다. 너무 기뻐서 돌아오는 길에 메티 집에 들러서 다짜고짜

“메티 이것 좀 봐! 오는 길에 주웠어. 코코넛 음료도 마시고, 코코넛 과육도 먹고, 코코넛 가루도 갈아서 요리에 쓸 거야!”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거창한 목표를 곁들인 자랑을 했는데 함께 기뻐해 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당황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그 코코넛은 덜 익어서 못 먹으니까 버려. 새것 따 줄게.”

그리고는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코코넛을 따게 했는데 자다 말고 갑자기 나무에 올라가 코코넛을 따게 된 남편은 1+1 이벤트 중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두 개나 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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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물결이 일렁이는 황혼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두 명이 작업을 마무리하고는 가벼운 그물을 들고 무거운 걸음으로 육지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춘 한 어부가 다른 이에게 그물을 맡겨 보내고 혼자 한참을 우두커니 서 황혼을 바라보았다. 뭘 하고 있었을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일까? 모르겠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산이 나를 받아주었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지 산이 나를 거부하면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 산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나는 사람의 입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고기를 많이 잡으면 자기가 잘나서 많이 잡은 것인가? 거만해도 되나? 반대로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면 허락하지 않은 바다를 향해 판단하고 소리칠 수 있나? 아니다. 고기를 많이 잡든 많이 잡지 못하든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뿐이지 않을까?


그 어부는 필히 바다에서 나고 자란 베테랑이었을 것이다. 베테랑 어부도 빈 그물을 끌어 올릴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빈 그물을 끌어 올린 그곳에 수백 번, 수천 번 그물을 들고 나간다. 베테랑은 그렇게 베테랑의 성품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몇 번의 실패를 마주하고 그 실패를 사실로 받아들여 금방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는가. 다시 일어나 기어이 그 실패를 성공의 주춧돌로 만들어 낸 적이 있는가.

고대 사람들은 항해할 때 지나온 길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았고, 별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알았다고 한다. 이처럼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의 결정체이듯, 지금의 내 습관적인 도전이 결국 나를 베테랑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어쩌면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메고 있어서 걸음이 무거웠을지 모르는 어부를 보고 있으니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가 생각났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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