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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씨 Apr 04. 2024

회사에 열받은 아들아 워워~

세상에 열받은 아들아 워워~

조금 늦은 저녁 터덜터덜 오늘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한 날이었습니다.

보통은 엄마랑 식사 후 TV를 같이 보며 낄낄거리고 있거나, 열심히 딴짓을 하고 있을 아들이 웬 일로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볍게 씻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 모니터 앞에 머리를 고정하고 뭔가 열중하고 있길래, 뭔가 하고 슬그머니 들어가 봤습니다. 

"뭐 하냐 아들?"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어요"

라고 하는데, 떠 있는 게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이용하는 구인구직 사이트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이공계 개발자들 전문 이직 사이트가 있을까요?"라고 묻길래, "아니 얼마 전 만 3년은 채우기로 했잖여?" 라고 물꼬를 텄습니다.


"왜 또 갑자기 이직 사이트들을 보고 그래? 회사에서 누가 또 열받게 한 거니?"

"뭔가 선배들과 함께 일하면서 기술도, 접근 방법도 배우면서 성장하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요. 지금 회사가 엄청 싫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작은 회사라 계속 갈아 넣기만 하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거 같아요"


이제 막 1년이 지난 2년 차 햇병아리 개발자의 푸념이지만, 아들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일정 부분 공감도 되고 해서 "그런 좋은 선배를 만나 함께 성장하면야 가장 좋겠지만, 현실에선 정말 쉽지 않아. 너는 어디를 이후에 가고 싶니?"라고 물어봤습니다.


"글쎄요, 중소 스타트업 다른 곳에 가본들 여기랑 비슷할 거 같고, 대기업에 가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얘기하는 아들에게 저는 솔직이 "글쎄... 요즘 대기업이 그렇게 네 말처럼 좋은 선배 밑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을걸"이라고 부정적인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선... 꼭 제 생각이 맞는 건 아닐 수 있지만 개발자 영역에서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일터의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우리나라가 IMF 전후로 회사의 신입사원과 주니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이후론 일부 후배들을 키우려는 마음을 가진 선임들이 리더로 있는 조직이 아니라면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IT기업이든 일반기업이든 주니어들을 열정적으로 이끌고 가르쳐 주는 선배는 만나기 정말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아서 IMF전 우리나라가 호황 끝물일 때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입사하고 거의 1년 반 정도까지는(이전에는 거의 3년차까지) 업무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육과 세미나들이 있었고, 성장을 위한 사내 교육과 외부 파견교육도 있었습니다.

그런 교육과 함께 지도선배와 매칭도 있어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돕고 성장시키려는 마음을 가지는 게 당연한 구조였어서, 저처럼 사회생활을 준비하지 못한 채 졸업했던 어리버리들도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알아가고 조직에 적응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IMF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 앞에서 '구조조정'이 상시화 되었고, 업무역량이 떨어지면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앞에서 '후배'와 '신입사원'은 가르치고 성장시켜야 할 '기꺼운 의무'의 대상에서 '잠재적 미래 경쟁상대'가 되어 버리도록 조장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이 변화는 서서히 여러 가지 상황들과 맞물려 천천히 전방위적으로 일어났기에, 바로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후배 개개인의 변화뿐 아니라 조직에서도 손실을 감내하고 '투자'의 개념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던 것에서 어느 정도 준비된 '경력직 사원'을 투자비용의 손실을 아끼면서 조금 더 주고 쓰는 게 회사 재무팀 입장에선 단기적으로 훨씬 이득인 것이 정석처럼 되어버린 사회가 되어 갔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들 아시는 것처럼 사회에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건, 참고로 할만한 기사나 통계자료가 공식적으로는 없습니다 ^^;;; 업계에서 나름 오랜 기간 실무와 현장을 접하며 체득한 개인적인 견해이기에 참고로만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1) 경력직 선호 일반화로 신입들이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회사로의 입사 기회가 너무 줄었습니다.

2) 학력 쏠림이 더 심해지는 원인도 되었습니다.

    : 대충 가르치고 바로 전장에 투입하려니 똑똑한 녀석이 낫겠다는 윗사람들의 암묵적인 생각에 소위 명문대학, 유학파를 선호하는 오류가 생겼고 이제는 그냥 그렇게 일반화되었습니다

3) 중소기업에서도 이제는 가르치는데 에너지를 많이 쏟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좋은 보수와 복리후생을 못 주는 대신, 열심히 돈과 에너지를 들여 성실해 보이는 직원을 뽑아 가르쳐서 쓰자는 모드였는데, 가르쳐서 쓸만한 3~5년 차가 되면 대기업에서 쏙쏙 빼가니 맥이 빠져서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더 작은 회사에서 자기들도 똑같이 빼오거나 프리들을 써서 때우는 문화가 일반화되어 버렸습니다.

4) 실력 없는 프리랜서들이 많아져 프리랜서 시장도 흙탕물로 만들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 원래 실력 있고 경험 많은 이들이 육아나 질병 등으로 퇴직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거나 정규직으로 오랜 기간 근무하지 못하는 여러 사유들이 있어 짧은 기간이지만 집중해서 책임 있게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이 당시에 각 분야 프리랜서라 불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위의 사회적 변화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조차 직원들을 제대로 키워주지 않는 문화 속에서 실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경력만 채워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이들이 그곳을 견디지 못하고 일정 기간만 채우고 나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경력은 화려한데, 실력은 "어? 뭐지?" 싶은 이들이 프리시장에 엄청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실력은 검증이 안되고 경력 때문에 단가는 올라가는 시장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실력이 안 되는 이들이 최소한의 경력(1~3년)을 갖추고 그냥 바로 프리시장에 우후죽순으로 뛰어 들어서 프리시장 규모는 엄청 커졌습니다. 시장의 질은 옥석구분이 안 되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

5) 경쟁력이 없어진 작은 기업부터 망하고 있습니다.

    : 대기업 후배들과 얘기들을 하다 보면 요즘은 쓸만한 기술력이 있는 협력업체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푸념을 항상 듣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없어도 대기업들의 욕을 먹으며 끝까지 버텨서 마무리해주는 회사들도 구하기 힘들어서 감사팀에 맨날 쓰는 회사를 계속 쓰냐는 욕과 업무 감사 조치를 먹으면서도 그나마 그런 회사들이라도 붙잡고 써야 하는 처지라고 하소연을 하는 경우를 자주 듣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중소기업들이 점점 망해서 이제는 몇 남아 있지 않다고들 합니다. 체력이 약한 작은 회사부터 망하고 있는 것이지요.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이 쌓여진 결과입니다 ㅠㅠ


이렇게 1998년 IMF 이후 이제 25년, 이런 문화(키우기보다는 경력직을 뽑아 쓰는 문화)가 시장 전반에 본격화된 것은 20여 년이 된 거 같습니다.

이런 악순환은 여전히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언론에 요즘 너도 나도 한국인 쓸만한 인력이 없으니 외국인 채용을 더 늘려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참고기사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080734821 , "韓 개발자 연봉 1억 vs 인도 3000만원…해외 인재 모시는 스타트업")


당장 사업을 하는 사장들 입장에선, 특히 스타트업들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고 일일수 있겠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계속해서 절망과 악순환을 제공하는 일이 된다 생각합니다.

(무조건 그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사장들은 이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돌파구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언론과 정부조차 이 상황과 그 기저에 깔린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한 체 저렇게 근시안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

시작이 IMF 이후 대기업에서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지만, 이 악순환을 개선하고 새로운 선순환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것도 뜻이 있는 대기업들이 나서줘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대기업들이 그렇게 투자의 관점에서 시간과 자본을 들일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책을 만들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 걱정은 요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소시민으로선 요기 까지만 하는 게 적당할 거 같습니다 ^^;


다시 아들과의 대화로 돌아가서 마무리하겠습니다 ^^

"아들


지금은 어딜 가도 네가 생각하는 좋은 선배와 함께 성장하는 멋진 그림을 기대하기 쉽지 않을 거 같아. 운이 좋아 시작이 그런 선배가 있는 회사에서 했다면야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회사에서 하루하루 힘들겠지만 잘 풀어내 보면서 열심히 해보렴. 

이 좋지 않은 세상 구조에서는 성실하게 열심히 3년, 솔직이 아부지 생각에는 5년 정도를 지금 회사에서 일하면서 네 성장을 위한 공부를 해간다면 너는 어딜 가도 제 몫은 할 수 있을 거 같고 그 정도가 되면 너 가고 싶은 분야의 회사 중 상당수는 얼마든지 가볼 수 있을 거야


그니깐... 

운동이나 하시고 밥이나 묵자

치킨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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