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 갑작스러운 비보를 받았다. 늘 교회에서 뵙던 이재봉 집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날이 주일이라 더 생생하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아침에 눈앞에서 뵈었던 분이 단 몇 시간 만에 소천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날따라 바로 내 앞에서 차를 마셨고 나도 오랜만에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얼굴이 붉고 매우 빛났다. 60이 넘은 남자분이 어쩌면 저렇게 얼굴이 반짝거릴 수가 있지! 하는 물음도 들었고 주름도 거의 없는 팽팽한 피부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계획하고 있는 영농센터 건립에 대해 매우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보여주는 핸드폰 속에 있는 설계도면을 보면서 꼼꼼함과 세심함에 놀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건립계획으로 꽉 차있었고 그런 도움을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남을 먼저 챙기기를 즐겨했던 그는 교회에 일찍 도착해서 늘 커피를 타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날도 그랬다.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권 집사님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는 매우 열정적이고 감성적이고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르완다에 온 지 10년이 넘는다고 했다. 부인과 사별하고 이곳에 왔다는 그는 건축 관련 일을 했는데 르완다 사람들에게 영농기술을 가르치는 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있던 중이었다. 밝은 성품 때문인지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몸이 얼마나 아팠는지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던지를 그땐 몰랐다. 그는 유독 교회에서 먹는 점심을 무척 좋아했고 소천하던 그날도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고 했다. 바로 이틀 전이 생일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철없는 삼촌이었고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났어도 친구 같은,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고 떠 올리는 것은 그만큼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일 테다. 그는 타인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때로는 농담처럼 들리는 말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던 것 같다. 솔직하고 숨김없는 성격이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낼 때도 있고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의 대변인을 자청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런 면이 있었다. 그것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것과 인간이 바라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평가는 훗날 그 사람이 남긴 뒷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많은 르완다 수양딸들에게 도움을 주던 아버지요, 직장에서는 좋은 상사로 기억되고 있었다. "우리 보스 많이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며 애도하던 현지인들에게서 진한 슬픔을 보았다. 타국에서 맞이한 장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교회와 대사관과 교민회가 하나가 되었다.말없이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하며 건강하기를 축복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그냥 오고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방금 올려다본 하늘을 또 올려다볼 수 있는 것이 은혜이고 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교회에 모여 천국환송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포근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말씀을 듣고 평안을 얻으며 많은 이들이 모여 그를 그리워했다.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평안하시기를 기도했다. 르완다 들판에서 꺾어 온 국화 송이처럼 어떤 꾸밈도 없이 자연스럽고 순수한 모습 그대로 그의 기억이 남겨졌다.
슬픔은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 되어 한 줄의 글이 되기까지,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나는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