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46화 - 수작

by 팬터피

**경찰서 앞 공터**




밖으로 나오자마자 츠즈키는 담배를 꺼내 상대에게 하나 건네고 친히 불까지 붙여주었다.




평소 윗사람들에겐 잘하지만, 동기나 자신보다 아랫사람에겐 그닥 친절하지 않았던 그라 신이치는 이런 모습이 어색하고 생소했다.




‘너 뭐 바라는 게 있구나.’




신이치는 우선 놈이 원하는 게 뭔지 들어보기로 했다. 이런 신이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츠즈키는 담배를 거의 한 대 다 피울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이에 답답한 신이치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할 말 있다며? 나 조사 중이라 빨리 들어가 봐야 해.”




상대의 재촉에도 급히 답을 하지 않던 츠즈키는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멀리 튕겨낸 뒤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이틀 전에 헌병대 중위 살인사건 있었던 건 알지?”




“당연하지. 통화시 사람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관동군 본청에서 두세 개 대대 병력이 이리 오고 있어. 그 사건으로 화가 난 거지.”




“그게 어쨌다고?”




상대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신이치는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그 사건은 테러범들 소행이야. 몇 달 전 대련에서 마코토 총독님께 폭탄 던진 놈들과 같은 집단이고.”




“뭐? 완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네. 미친놈들··· 근데 그 사건과 지금 내가 담당한 사건이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거야?”




주변을 조심스럽게 한 번 더 훑어본 츠즈키는 좀 전보다 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어제 죽은 놈이···.. 그 테러단체 놈들 중 하나야. 내 정보원 하나가 정보를 캐내려고 놈의 집에 잠입한 거고.”




“음······ 이거 꽤나 복잡한 사건이구나.”




신이치는 귀를 긁적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사건은 항상 원칙대로 마무리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왜 굳이 죽인 거지? 그냥 체포해 와서 정보를 캐내면 되잖아?”




“뭐··· 처음부터 죽이려 들어간 건 아니고··· 갑자기 이상한 놈이 껴드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같더라고.”




“근데··· 말이 안 되는 게··· 주변 증언에 따르면 총소리가 먼저 나고 저 친구가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고 하거든. 죽이려고 들어간 게 아니면 왜 총질부터 하지?”




“아···. 그건···”




만만하게 봤던 신이치가 생각보다 꼬치꼬치 캐묻자 츠즈키는 짜증이 났다. 이런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으니 그냥 자기 말대로 따를 줄 알았는데, 은근히 바로 포기하지 않는 게 거슬렸던 것이다.




“아직 자세한 보고를 받진 못했지만 아마 협박용으로 쐈던 게 아닐까 싶어.”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근데 왜 죽였을까?”




“아니! 그건!”




말이 계속 같은 부분을 맴돌자 츠즈키는 약간 욱! 했으나, 지금 화를 내면 유리할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말을 다시 곱씹고 진정을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의도치 않게 불청객이 생기면서 그렇게 된 거지···”




“음.. 어쨌든 자네도 참 번거롭겠구만. 고생이 많네.”




신이치 경감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동기이긴 하지만, 이런 복잡한 일을 하고 있는 그가 진심으로 대견스러워 어깨를 툭 치며 위로했다.




“고맙네. 그래서 말인데··· 이런저런 상황이 있어서 말이지···. 저 조선 놈을 이번 살인사건 범인으로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끝내는 게 어떤가?”




“지금 잡혀온 놈에게 살인자로 누명을 씌우라고? 왜?”




“말했지만 복잡한 사건이고, 대련 본청 사람들이 오기 전에 상황이 마무리돼야 여러 가지로 큰 문제를 피할 수 있네.”




그의 말이 논리적이진 않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누명을 쓰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건 살인사건이지 않은가! 잘못되면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중범죄인데, 누명을 씌우다니··· 말도 안 되네!”




“어차피 조선인 하나 죽은 거잖나. 조선인 하나 누명 쓰는 거고. 누구도 신경 안 쓴다고. 아무튼 이번만 그렇게 처리해 줘. 부탁할게.”




동기지만, 소위 잘 나가는 츠즈키의 난감한 부탁을 신이치는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말도 못 한 채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담배만 물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이번 일만 잘 끝내면 서장님께 부탁해서 자네 좋은 자리 한번 봐주겠다. 자네도 여기서 평생 썩고 싶은 건 아니지 않나?”




“이 일에 서장님도 연관되어 있는가?”




직속상관도 이 일에 관련이 있단 말에 신이치는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츠즈키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바로 물었다.




“그럼! 당연히 연관 있지. 내가 이런 정보를 어찌 다 알고 있겠는가··· 다 서장님께 전달받은 내용이고 지시받은 일들이라네.”




“음······ 뭐 그렇다면 알았네. 그렇게 처리하겠네. 위에서 시키는 거라는데···. 별 수 없겠구만.”




“고맙네. 그럼 그리 처리되는 걸로 알고 먼저 들어가 보겠네.”




츠즈키는 두 손으로 상대의 손을 꼭 잡은 뒤 먼저 건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는 것을 보며 신이치는 씁쓸한 표정으로 남은 담배를 마저 피웠다.








**경찰서 안**




취조를 하던 경감이 츠즈키와 나간 뒤 한참을 돌아오지 않자 형원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나 간사하고 치사한 놈인지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지··· 설마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는 수작인가? 자기 정보원을 지키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만두집 사장은 츠즈키의 밀정으로 보였다. 달수가 예전에 했던 말들도 그렇고, 진을 죽인 거며, 심지어 달수에게 쏜 총은 경찰서에서 들고 온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지시한 살인의 용의자가 현장에서 다른 사람으로 잡혀왔다면, 그걸 절대 놓칠 놈이 아니라고 형원은 추측했다.




‘만약 둘이 그런 그림을 만들어온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냥 그 매국노 쥐새끼를 불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스즈키가 앞을 지나가 자리에 앉았고, 얼마 후 신이치도 자리로 돌아왔다.




“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어디까지 했지?”




“용의자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응, 그건 이제 됐고. 숙소랑 동네가 가깝지 않은데 거긴 왜 간 거지?”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용의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던 사람이 갑자기 거기에 관심이 없어졌단 사실에 형원은 상대가 츠즈키에게 넘어갔음을 확신했다.




“제가 인력거를 끌어서요. 근처 지나다가 총소리를 듣고 들어간 겁니다. 그나저나···. 용의자 인상착의가 기억날 것 같습니다.”




멀리서 조심스레 둘의 대화를 엿듣던 츠즈키는, 그 말이 나온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놈이 사장을 봤다고 불어버리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용의자가 기억 안 난다고 하다가 말을 바꾼 형원을 보고 신이치 경감은 이 상황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평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츠즈키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 아까는 잘 기억이 안 난다더니, 잠깐 사이에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거냐?”




“그건 아니고, 이러다 제가 누명을 쓰게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나가 계신 동안 기억을 잘 더듬어봤죠.”




“그래, 그럼 인상착의가 기억이 나느냐?”




“네. 그날 머리를 세게 맞아 기억이 잘 안 났었는데···.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어디서 한 번 봤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형원은 자기가 말을 바꾼 게 티가 나지 않기 위해, 말을 더듬거리며 겨우 겨우 기억을 찾아가는 척 연기를 했다.




한편, 츠즈키는 형원이 어디서 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둘의 대화에 계속 집중했다.




“그래? 혹시 어디서 봤던 것 같으냐?”




“음···. 그게···. 시내 어디···.. 식당에서 본 듯합니다.”




츠즈키는 형원의 계속된 발언에 당황해서 빠르게 형원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있던 그를 발로 찼고, 손, 발이 묶여있던 그는 자리에서 퍽 하고 넘어졌다.




츠즈키는 짜증을 내며 그에게 총을 겨누고 말했다.




“이 살인자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을 짓거리냐? 듣자 듣자 하니 못 들어주겠구나!”




큰 소란에 경찰서의 모든 이가 이들을 쳐다봤다. 거만한 동기의 급발진이 통쾌해 신이치는 티 나지 않게 교묘한 미소를 지었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윤세주 (尹世胄, 1900~1942)




경남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3·13 밀양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같은 해 김원봉 등과 함께 의열단 창립에 참여하였다. 1920년 폭탄을 반입하다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출옥 후 신간회 밀양지회 총무간사로 활동했다. 1932년 중국으로 망명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수료하고 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조선의용대 훈련주임과 화북지대 정치위원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1942년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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