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47화 - 작별인사

by 팬터피


**경찰서**


형원은 자기가 말을 바꾼 게 티가 나지 않기 위해, 말을 더듬거리며 겨우겨우 기억을 찾아가는 척 연기를 했다.


한편, 츠즈키는 형원이 어디서 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둘의 대화에 계속 집중했다.


“그래? 혹시 어디서 봤던 것 같으냐?”


“음···. 그게···. 시내 어디···.. 식당에서.. 본 듯합니다.”


츠즈키는 형원의 계속된 발언에 당황해서 빠르게 형원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던 그를 발로 찼고, 손, 발이 묶여 있던 그는 자리에서 퍽 하고 넘어졌다.


츠즈키는 짜증을 내며 그에게 총을 겨누고 말했다.


“이 살인자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을 지껄이냐? 듣자 듣자 하니 못 들어주겠구나!”


큰 소란에 경찰서의 모든 이가 이들을 쳐다봤다. 거만한 동기의 급발진이 통쾌해 신이치는 티 나지 않게 교묘한 미소를 지었다.


“왜 이리 소란들인가?”


이때, 서장이 자신의 방 문을 쾅 열고 소리쳤다. 그의 역정에 츠즈키를 쳐다보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황급히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각자의 일을 하는 척했다.


“죄송합니다, 서장님. 이 살인자가 자기 죄를 뉘우치지는 못 할 망정, 뻔뻔하게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해서요.”


“방금 제보를 하나 받았는데, 그놈은 범인이 아닌 듯하니 조사는 여기까지만 하시게.”


의외의 소식에 형원은 물론 신이치, 츠즈키 경감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짜증이 난 츠즈키가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놈은 현장에서 잡혀온 놈입니다!”


“어떤 바보천치가 사람 죽이고 그 자리에서 자고 있나? 범인한테 당한 거지. 딴 말 말고 진짜 범인 다시 찾아!”


서장은 짜증을 내고 문을 세게 닫았다. 어이없는 츠즈키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서장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를 통쾌하게 바라보던 신이치는 쓰러져 있는 형원을 일으켜 세웠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건 내가 사과하네. 여기 사람들이 일을 하다 보면 좀 예민해져 있단 말이지.”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묶인 손을 내밀며 형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게, 절차라는 게 있어서 바로는 힘드니 좀 기다립시다.”


“얼마나···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형원은 더욱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쫓기는 신분인 점도 그렇지만, 진과 달수의 복수를 빨리 하고픈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2, 3일쯤? 어쨌든 살인 사건이고, 현장에서 잡혀왔으니 형식적인 조사들도 해야 하고 해서. 왜요? 빨리 나가봐야 해요?”


“여기 오래 있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인력거꾼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오늘 일 못 한 것도 그렇고, 며칠이나 쉬면 지금 숙소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서요.”


형원은 최대한 상대방의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게 말을 꾸몄다. 사실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복수심에 가득 차 있는 지금 그에게 숙소에서 쫓겨나는 건 그다지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음··· 알았네. 내가 최대한 빨리 정리해 보겠네. 우선 이것만 좀 정리할 테니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게.”



********************



한편, 서장실로 따라간 츠즈키는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조심히 그에게 물었다.


“왜 저자를 풀어주라 하신 겁니까?”


“츠즈키 경감, 자네는 언제부터 내 말에 이렇게 토를 달았나?”


“혹시나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상대의 예민한 반응에 츠즈키는 넙죽 엎드렸다. 그런 모습을 서장은 못마땅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만두집 사장, 그 노인네에게 전화가 왔네. 잡혀온 놈을 풀어주라고.”


그 말을 듣고 츠즈키는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서장을 바라봤다.


“네? 그 자가 왜?”


“저 놈이 갑자기 왜 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자신을 봤고, 누군지도 아는 놈이다. 그래서 놈을 여기 놔두면 자기가 위험해질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


“그런 건 저희가 잘 만들어 처리하면 되지 않습니까?”


계속되는 츠즈키의 질문에 서장은 귀찮아하며 짜증 섞인 어조로 답했다.


“안에 두면 불안하다고 자기가 직접 처리하겠다 해서 그리하자 했네. 이제 이 문제는 그만 논하고 나가보게.”


서장의 뜻이 확고한 걸 느낀 츠즈키는 더 이상의 대화와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경례를 하고 방을 나서려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노크를 하고 문이 열렸다. 이에 츠즈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어? 자네도 있었나?”


방으로 들어온 자는 바로 독립군에게 치욕을 당한 켄타였다. 그를 보고 서장이 반가워하며 맞이하였다.


“어, 그래. 잘 왔네. 내일 고향으로 간다고?”


“네, 맞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인사나 드릴 겸 들렀습니다.”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쁠 텐데 뭘 이렇게 왔나.”


“거의 다 정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진심으로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켄타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우나 고우나 안 좋은 일을 겪고 떠나게 된 아랫사람이 가여워 서장은 켄타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어찌 됐든 이리 가게 되니 참으로 아쉽고 그렇구나. 고향 내려가서도 잘 살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봅세.”


이 한심한 녀석이 납치되어 이리저리 일이 꼬였던 게 짜증 났던 츠즈키는 둘이 앞에서 이러고 있는 게 꼴사나웠다. 그러나 굳이 티 내지 않고 형식상 그에게 인사를 했다.


“벌써 날이 그리 되었나. 그동안 고생 많았네. 조심히 가고 잘 살게나.”


“고맙다. 너도 몸 조심하고. 위험한 놈들이더라.”


“걱정 마. 위험하긴 해도 놈들은 다 우리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서장이 켄타에게 악수를 청하며 한번 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솔직히 내일 배웅이라도 가든 짐 나르는 거라도 도우라고 누굴 보내면 좋은데, 하필이면 내일 복잡스러운 일들이 있어서··· 작별 인사는 여기서 해야겠네.”


“바쁘신데 별말씀을요. 근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실은, 내일 청산리 전투에서 우릴 능멸했던 김좌진을 체포할 거라네.”


아직 다른 경찰들에게도 누설하지 않았던 기밀 작전을 갑자기 말해버린 서장의 행동에 츠즈키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당황하기는 켄타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관동군은 이름만 들어서 치를 떠는 김좌진이라니··· 워낙 신출귀몰하기로 유명해 거의 십 년 가까이를 잡지 못하고 애를 썩히는 그 유명한 김좌진을 잡는다니. 그는 갑자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호기심이 들었다.


“네? 그놈을 어떻게?”


“사연이 기네. 아무튼 그리 되었네. 내일 시내에 큰 만두가게 있지 않은가? 샤오롱 뭐시기였나? 아무튼 그곳에서 반란군 놈들 회동이 있는 모양이야.”


어이없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츠즈키가 중간에 말을 가로 쳤다.


“서장님, 이거 기밀 사항인데···”


“뭐 어떤가. 내일 갈 사람인데. 그리고 여기 사람들도 내일이면 다 알게 될 텐데.”


켄타가 환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서장님, 승진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김좌진이라니! 근데 확실한 정보인가요?”


“모인다는 그 만두집 말이지. 거기 사장을 우리 쪽으로 포섭했지! 하하!”


“아니, 서장님. 기밀 사항을 이렇게 다 말씀하시면···”


곧 떠나는 켄타를 편하게 생각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서장을 츠즈키는 한번 더 조심스레 제지하였다. 그러나 서장은 그런 부분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참. 자네가 잡혀갔던 곳이 어딘지 찾았네. 그놈들도 내일 기동대 출동시켜 싹 다 잡아넣을 거니 이제 더러운 기억은 지우고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아, 정말이십니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니네. 결과야 어떻든 고생 많았네.”


“감사합니다. 그럼 전 뒤에 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장님, 승승장구하시고요. 츠즈키 자네도 항시 조심하고.”


서장이 그를 배웅해 주려 서장실 밖으로 같이 나왔다. 그때, 서른 명 남짓되는 군인들이 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본청 헌병대장과 그의 부하들이었다. 헌병대장과 서장은 눈이 마주쳤고, 대장은 그를 보자마자 뚜벅뚜벅 서장 쪽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시오, 일전에 인사드렸죠. 나 본청 헌병대장이올시다.”


헌병대장은 서장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였다. 서장도 다급히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누추한 곳까지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 총독님께 폭탄 던진 놈과 타케루 중위에게 몹 쓸 짓 한 놈들은 찾았소?”


그 말을 듣자마자 신이치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형원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두 사건 모두 자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형원은 또다시 당황했다. 대련에서 폭탄을 던질 때 마주쳤던, 초대장을 검사하던 군인이 바로 옆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고광순 (高光洵, 1866~1907)



전라남도 장성 출신의 의병장으로, 호는 성재(惺齋)다. 구한말 성균관 진사로 과거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애국계몽운동에 힘썼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일제의 침탈에 맞서 호남창의회를 조직, 장성·전주 일대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9월 11일 남원성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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