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77화 - 항복

by 팬터피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다양한 위치에서 희생하다 잡혀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고문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언젠가는 다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와 조국의 독립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에서 사람들이 한 시간 넘게 크게 소리 지르는 걸 듣고 뭔가 큰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요?”




“혹시 사람들이 만세라고 외치고 있는 게 맞소?”




“교도관 양반. 이게 무슨 일이오?”




“일본이 미국과 소련 연합군에 항복을 했소. 그래서 이제 곧 이 나라가 독립이 될 듯한 분위기요.”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부둥켜안았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아니, 그게 진짜요!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우리의 조국을 되찾게 되었군요.”




특히 무장투쟁 등으로 잡혀온 무기징역수, 사형수들은 더욱 이 말에 기운이 났다. 그중 이곳에서 거의 19년간 복역 중이던 사형수 정이형은 이 말을 듣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겠군요. 늙은 홀어머니 옥수발 드시는 거 죄스러운 맘이었는데 이제 곧 끝이네요.”




이때, 지나가다 이 이야기를 듣던 간수 하나가 옆으로 와서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대화에 껴들었다.




“아직 좋아하기엔 이르네. 혹시 자네들 돈은 좀 있는가?”




“갑자기 무슨 돈타령이요?”




“일본은 항복을 한 게 맞지만, 아직 우리의 독립은 되지 않았단 말이지.”




“근데요?”




“놈들이 돌아가기 전에 사형수들을 싹 다 죽이려는 것 같던데···. 돈을 내면 석방을 시켜주려는 듯하오. 여기 총독이 부임한 지 1년뿐이라 아직 주머니를 두둑히 못 챙겼거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축제 분위기던 이곳은 갑자기 싸늘해졌다.




“지금 사람 목숨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게요? 그게 말이나 되오?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




“이것 봐요. 자기네를 죽이려고 안달 난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나 많은데, 그놈들이 쉽게 풀어주겠냐 이 말이지.”




“그렇다고 저 원수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돈을 주다니, 그럴 순 없소.”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겁니다. 다들 가족도 있잖소. 잘 생각해 보고 알려주시구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정부 건물 앞마당에는 이번 서울 침공작전을 준비하는 병사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범석 참모관을 둘러싸고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긴장하고 있었다.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이범석의 목소리는 차갑고 공허했다. 사람들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울 침공작전 연합군들끼리도 어찌해야 할지 각 나라별로 입장이 달라서 최대한 빨리 복귀하여 우리끼리라도 작전을 수행하려고 했던 건데···.. 오는 길에 일왕 히로히토가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항복’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병사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져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쁨의 눈물과 안타까운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 상황을 마냥 즐길 수 없었던 형원은 주먹을 꽉 쥐고 참모관을 향해 물었다.




“그럼··· 우리의 서울 침공작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하였으니, 굳이 불필요한 전쟁은 필요 없겠지.”




“그렇다면 이 병력 그대로 일본 본토로 바로 들어가 우리가 그들을 침략하는 건 어떻습니까?”




생각하지도 못한 제안에 갑자기 범석과 진은 물론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몇몇은 생각했다. 이 정도 준비했으니 일본을 이길 수도 있겠다고.






**조선총독부 - 총독실**




원자폭탄의 폭격으로 일본은 미국 등의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한 상태였지만, 조선총독부는 아직 어떤 명령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건지 궁금했던 총독은 엔도 총감을 시켜 돌아가는 내용을 파악하라 지시했다. 엔도는 빠르게 정보를 수집한 뒤 급히 달려가 총독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찌 되어가고 있나?”




“본청에서는 아직 다른 연락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보원에 따르면 본국은 필리핀 등 다른 나라들은 반환하더라도 이곳 조선만큼은 잃고 싶지 않은 듯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미국, 소련 등에 협상을 통해 조선의 통치를 유지하려 시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본청에서 아무런 지시가 없는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총독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웅켜쥐었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조선인들이 언제 이곳을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빨리 가솔을 챙겨 도망치고 싶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난 본토로 가서 차후 어찌할지를 의논하고 돌아올 테니 넌 위의 지시를 기다리도록 해라.”




“네? 저도 총독님과 같이 들어갔다 오면 안 되겠습니까?”




이때 총독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아까 서대문형무소의 교도관이었다.




“미쓰라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네 놈 따위가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냐?”




총독실을 당당히 들어오는 상대가 지위가 한참이나 낮은 조선인 관료인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한 엔도가 소리쳤다. 그러나 미쓰라는 이에 눈도 깜빡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전쟁도 끝났고, 당신들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굳이 예의를 차려야 합니까?”




“이래서 너희 미개한 조센징 놈들은 우리 지배를 더 받았어야 하는 건데, 참 안타깝구나.”




그는 상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있던 장부를 총감에게 내밀었다. 엔도는 수첩의 내용을 보고 의아해했다.




“이들은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 아니냐. 뭘 하자는 거지?”




“이름 앞에 동그라미 친 것들이 바로 사형 집행 명단입니다. 허가해 주시면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습니다.”




“너가 진짜 미친 게로구나. 지금 상황을 알고도 이 사람들을 다 죽이자고?”




총감인 엔도는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무시했다. 그러나 총독은 그 명단을 다시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된 마당에 우리 손에 굳이 피를 묻힐 이유가 있나? 돌아가는 판이 우리는 이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신세인 듯한데 말이지.”




“제가 따로 조사를 하였고, 이 사람들은 나중에 당신들이 돌아갈 때 당신들 목을 노릴 수도 있는 놈들입니다.”




그 말에 둘은 다시 한번 명부를 살펴봤다. 그 안에는 테러로 수감된 인원들이 상당수였다.




“이들을 처단한다 하면, 강경파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 괜찮겠소?”




“네. 그러니까 미리 처리하셔야죠. 이러다 하루아침에 돌아가셔야 되는 상황이 오면 이 놈들이 과연 당신네들을 곱게 집에 가게 둘까요?”




결국 총독은 미쓰라의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는 이를 들고 문 밖을 나오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 작전실**




“그렇다면 이 병력 그대로 일본 본토로 바로 들어가 우리가 그들을 침략하는 건 어떻습니까?”




“음··· 뭐··· 자네의 아쉬운 마음 잘 알겠네. 그런데 일본은 수십 년 동안 중국, 소련, 미국 등의 강대국들과 전쟁을 해 오면서 축적해 온 기술력이 상당하다네. 특히나 섬나라라서 아주 오래전부터 해상 전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일본 땅에 발이 닿기도 전에 우리는 전멸할 걸세.”




다른 사람들도 이 황당한 제안에 다양한 목소리를 얹었다.




“맞습니다. 일본이 보유한 함대를 보셨습니까? 우리는 제대로 된 배 한 척 없는데···”




“일본 땅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지금 병력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도 같은데 참 아쉽네요.”




“근데 진짜 저희가 당한 만큼 똑같이 갚아주고 싶긴 하네요. 이렇게 손도 못 써보고 놈들을 돌려보내야 하다니 좀 허무하긴 합니다.”




“미국에 도움을 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거긴 우리랑 같은 편이잖아요.”




사람들의 열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진은 사람들을 주목시킨 뒤, 흥분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어찌 되었든 이제 일본은 항복한 국가입니다. 그런 나라를 침략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과 소련은 우리를 돕는 게 아니라 이를 저지할 것입니다. 그들은 일본에 우리처럼 원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장군이 그들의 실망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허무하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목적은 조국의 자유를 되찾는 것이고, 그 꿈이 코앞까지 왔으니,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 아니겠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입니다.”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곧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빨리 짐 정리를 해야겠구만.”




“우리가 챙길 짐이란 게 있었나? 하하하.”




이런 웃음들과 나름 생기가 도는 분위기 속에서도 형원과 진은 뭔가 모를 아쉬움에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형원이 씁쓸함을 토로했다.




“뭐가 이리도 찝찝하지.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그러게. 그렇게도 오랫동안 염원했던 순간인데···”




“일본과 전쟁을 다시 하는 건 정말 아닌 거 같아?”




“응. 아까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리는 육지전과 일부 항공전만 준비했잖아. 서울로 가는 것과 도쿄로 가는 건 전투 방식부터가 달라. 그리고 이제 막 전쟁이 끝났는데··· 미국도 우리를 저지하려 할 거야.”




답답한 마음에 아무런 의욕도 들지 않아 형원은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에는 이미 짐을 정리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밤이 깊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 피를 흘렸고,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내 땅에 걸어서 들어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허전했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정이형 (鄭伊衡, 1897~1956)




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무장 독립운동가로, 만주에서 대한통의부 중대장과 정의부 사령부관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고려혁명당 창립에도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27년 하얼빈에서 체포된 뒤 해방될 때까지 약 19년간 옥중에서 투옥되며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광복 후에는 남북협상과 친일파 청산 운동에 앞장섰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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