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78화 - 반쪽짜리 독립

by 팬터피

**서대문형무소 앞 - 45년 9월**




한국은 어부지리였지만 결국 꿈에 그리던 자유를 찾았다.




조선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본은 승전국에 그 의지를 피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하였고, 약 한 달간의 인수인계를 통해 모든 행정 권한이 미국으로 이행됐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인 대부분이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행정상으로 일본의 지배가 끝이 난 날, 서대문형무소의 많은 이들이 석방되었다.




이곳 최대 장기 복역수 이형도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무거운 철문을 가볍게 밀고 나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바깥공기가 간지러워 그는 코를 긁적였다.




“아이고~ 이형아, 내 새끼, 고생 많았어.”




“아니에요. 어머니께서 다 큰 아들 옥살이 수발드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다. 이렇게 나와줘서 고맙다.”




“근데 어머니. 일본 놈들한테 돈을 주신 거예요?”




“그게 일본 놈들이 받아가는 돈이니? 너랑 친한 교도관이라고 돈만 주면 잘 빼주겠다고 하던데.”




“네? 그게 무슨···. 그나저나 저희 형편에 무슨 돈이 있다고···”




“나도 막막해서 이리저리 돈을 꾸려고 다녔었는데, 어디서 알게 되셨는지 어떤 사장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다 마련해 주셨단다. 어! 저기 계시네. 검은 외투 입으신 분.”




저 뒤쪽에는 꾀죄죄한 양복 차림의 누가 봐도 재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이형은 그 사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다가오는 걸 눈치챈 남자는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띠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아이고, 선생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께 말씀 들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요. 선생님께서 나라를 위해 싸워주신 덕에 이렇게 좋은 날이 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더 일찍 도와드리지 못한 점 아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형은 이 중년 신사의 사려 깊은 한마디에 큰 감동을 받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숙연해졌다. 이런 이형을 신사는 토닥이며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러는 사이 유치장에서 몇 사람이 더 나왔고, 이형처럼 이 신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고마움을 표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같이 들어가셨던 분들도 같이 나오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전쟁이 끝난 마당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이건 미쓰라라는 조선인 교도관이 꾸민 짓 같습니다. 총독은 별생각 없이 사형 집행을 승인한 것 같고요.”




“아니, 같은 동포끼리 어찌···.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이군요.”




중년 신사는 그 이야기에 화를 내며 옆에 같이 온 일행으로 보이는 자에게 말했다.




“실장님, 이거 관련해서 조사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갑자기 이형은 초면에 사연 이야기부터 하느라 통성명도 안 했단 생각이 불현듯 들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사장님, 성함도 제대로 듣지 못하였네요.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저는 정이형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존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여기 계신 분들 모두요. 저는 윤창식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듣고 주변 사람들은 역시···라는 생각을 하였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처음 회사 이끄신 민강 사장님과 같이 복역했었습니다. 그때도 많은 도움 받았는데 이렇게 또 도움을 받게 되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께서 하신 일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은 그냥 소소할 따름입니다. 집에 얼른 들어가셔서 가족분들과 오랜만에 따뜻한 식사라도 드셔요. 그리고 혹시 과식하시고 체하시면 이거 드시고요. 제가 드릴 게 뭐가 없네요.”




그는 퇴소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부채가 그려진 큰 병을 하나씩 건넸다. 그렇게 그들은 몇십 년 동안의 아픔을 달래며 서로를 위로하고 독립을 맞이하였다.








**남대문 시장 옆길 공터**




“대한독립만세!!”




벌써 해방을 한 지 약 한 달쯤 흘렀지만, 간혹 아직도 길거리에서 만세를 외치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만큼 사람들은 수십 년간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기쁨이 주체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이런저런 이유들로 아직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이었다.




“미개한 것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소리를 지르고 다니다니.”




“그러게요. 어차피 이 놈들은 100년이 지나도 우리 지배를 못 벗어날 텐데. 뭔 저리 난리들인지.”




미국의 보호 하에 안전을 보장받아 그전과 마찬가지로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는 꼴이 사람들은 얄미웠다. 거기에 큰소리로 이 나라를 얕잡아보는 말을 서슴지 않게 떠들어대는 놈들을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수군댔다.




“저 죽일 놈들. 돌이라도 던져서 당했던 거 분풀이하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왜 그냥 던지지 그러나. 아님 집까지 따라가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곡괭이라도 들고 쳐들어가는 건 어떤가?”




“저 놈들 집에 다들 총 몇 자루씩 있다던데 어찌 그러겠는가. 그리고 아직 일부 일본군이 철수를 안 했다며. 괜히 한풀이한답시고 갔다가 군인들이 칼이라도 들이대면 어째? 난 아직도 저 놈들만 보면 온몸의 털들이 바짝 서는 느낌이라니깐···”




비록 나라는 되찾았지만, 수십 년간 당해 왔던 응어리를 제대로 풀기는커녕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들을 두려워서 분노만 삭이고 있을 뿐이었다.




“겁쟁이구만. 저 놈들이 뭐가 그리 무섭다고 그러나? 잘 보시게.”




말을 마치자마자 한 남자가 근처에 있는 돌을 집어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냅다 던졌다. 그렇지만 그 돌은 조준이 잘되지 않아 그 일본 남자의 옆을 살짝 비껴갔다.




처음에는 당황한 일본인이 주변을 살피다가 씩씩대며 돌을 던진 사람에게 다가가 총을 겨눴다.




“미개한 조센징 놈아. 어디라고 돌을 던지는 게냐?”




돌을 던졌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의 총을 보자마자 그 사내와 일행은 바로 겁에 질려 말을 멈췄다. 그러다 옆에 있던 한 명이 넙죽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나으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친구가 낮술이 과했나 봅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가 항복했다고 미개한 너희들에게까지 겁먹을까 보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풀린 듯한 일본인은 총을 거두며 말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 내가 관대함을 베풀어주마.”




그는 뒤를 돌아가는 척하더니 몸을 돌려 벌벌 떨고 있는 조선인의 머리를 총으로 내리찍었다. 불쌍한 그 사내는 머리를 맞자마자 바닥에 픽 쓰러졌다. 그러자 일본인은 그를 발로 찼다.




“멍청한 조센징들! 너희가 이긴 것 같지? 웃기지 마라. 우리가 서양 놈들에게 진 거지, 너희 같은 벌레만도 못한 놈들에게 진 게 아니다.”




그 말을 들은 일행이 상대의 비하 발언에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동료를 공격하고 있는 상대를 발로 차 쓰러뜨렸다. 그는 생각치 못한 공격에 잠깐 당황했다.




그러나 바로 넘어진 몸을 일으킨 그는 넘어지며 떨어뜨렸던 총을 주웠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동료를 챙기고 있는 사내를 향해 그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이 상황을 지켜만 보던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놀라 숨거나 엎드렸다. 다행히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오히려 무자비한 그 일본인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그 자 앞에는 형원이 있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다 멀리서 발견한 그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나서서 날아차기로 상대를 제압한 것이다.




“오늘 너희 조센징 새끼들이 다들 죽고 싶은 게로구나!”




쓰러진 녀석의 일행이 형원을 향해 바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에게 닿을 순 없었다. 그는 멍청한 일본 놈의 팔을 가볍게 낚아채 엎어치기로 제압한 뒤 두 놈을 번갈아 가며 흠씬 두들겨 팼다.




“이제 적당히 하고 가자.”




진이 급히 뛰어와 형원을 말렸다. 그러나 그는 화가 나 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놔. 너도 저 새끼들이 뭔 짓을 하는지 다 봤잖아.”




“응. 알아. 봤어. 근데 이러다 죽겠어.”




자신을 자꾸 말리는 진에게 형원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저런 놈들은 죽어도 싸. 우리가 쪽바리 놈들 한둘 죽인 것도 아니잖아.”




그때였다. 형원에게 맞아 얼굴 등이 퉁퉁 부은 일본인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던 총을 주워 형원에게 겨눴고, 이를 본 진은 상대의 총을 든 손을 발로 찼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당황한 형원은 발길질 몇 번을 더 한 뒤, 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웠다. 그러자 진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




“그만하고 그냥 보내 줘.”




“오늘따라 왜 자꾸 저 녀석들 편을 드는 거야?”




“전쟁이 끝났어. 무의미한 사살일 뿐이야.”




“저 새끼가 내 동포에게 총을 겨눴어.”




둘이 실랑이하고 있는 사이 바닥에 있던 일본인은 단검을 꺼내 그들에게 달려들려 했다. 이를 본 형원이 급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 일본인이 공격하려던 걸 자세히 보지 못한 진은 결국 총을 쏜 형원을 한심한 듯 바라보았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윤창식 (尹昶植, 1893~1963)




평안북도 창성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5년 항일 비밀결사 조선산직장려계를 조직하고, 대동청년당을 결성해 민족자본 육성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자신이 운영하던 동화약방을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비밀 거점으로 삼아 자금과 연락망을 지원했다. 동화약방 수익은 임시정부 활동의 주요 재원이 되었으며, 그는 이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동화약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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