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80화 - 체포

by 팬터피


**시장 국밥집**




형원은 광복 이후 혼란스러웠다. 자신은 분명 나라의 독립을 원하고 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모든 게 허무했다. 거기에 약 15년을 동고동락한 진과 그 사건 이후로 며칠을 남남처럼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었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우리나라의 독립이 아닌 그냥 일본인들에게 총질해 대는 것이었던가? 그렇다면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하지?’




이런 고뇌를 하며 그는 며칠을 주막에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그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독립군 시절 동료이자 같은 숙소를 쓰고 있던 우진과 진호가 뛰어왔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경찰서에서 형님을 잡아간다고 다녀갔어요.”




“저번에 일본 놈 하나 죽인 게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이 미친놈들이 감히 형님을···.”




“이러지 마시고 빨리 어디 숨으시던지 하셔야 할 듯합니다.”




자신을 체포한다는 말에도 형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를 쏜 게 맞고, 결과가 어찌 되었든 자신은 칼을 들고 오는 적을 쐈기 때문이다.




“됐다. 잡아가면 가는 거지 뭘 이렇게 찾아왔어.”




“이게 지금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게요, 형님. 미군정 입김이 개입한 것 같아요.”




“미국에서 기선제압한답시고 난리 치는 것 같아요. 아니 근데, 일본 새끼들이 우리 동포들 아무 이유 없이 죽일 땐 가만히 있던 놈들이 이제 와서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때 마침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너무한 건지 아닌지는 서에 들어가서 판단하시죠.”




“네. 그러시죠. 근데 제 총에 저 세상 간 일본인이 천 명도 넘을 텐데, 그 죄도 다 물을 건가요?”




“항복한 국가의 민간인을 살해한 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들어가서 같이 이야기하시죠.”




경찰은 형원에게 다가가 그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려 했다. 그러나 형원은 순순히 따르겠다며 이를 거부하고 경찰차로 걸어갔다.




“형님, 이렇게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야, 너희 지금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손을 대?”




“아니, 우리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웠는데! 우릴 이렇게 대해!”




“너희도 같은 한국인이잖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차에 타려던 그는 걱정하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야. 호들갑 좀 그만 떨어. 별일 없겠지. 다녀올게. 아.. 그리고 미안하지만, 빼앗겼던 이 나라를 되찾은 건 우리가 아냐. 알잖아.”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 청사 (옛 조선총독부)**




미군은 옛 조선총독부의 건물에 미군정을 두고 대한민국의 각종 체제 수립에 관여하였다. 그렇지만 일제 식민지 시절 실무진도 일본인들이었던 것과 달리 미군정 내에서는 한국인이 직접 실무를 하였다.




독립군으로 활약하던 많은 사람들이 군인, 경찰, 또는 정치를 하며 나라를 위해 힘썼다. 진도 한국에 들어와 군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강당에서 체력 단련을 하고 자리로 들어가던 중 다급히 사무실을 나가려는 이범석 총사령관을 만났다.




“총사령관님, 어디를 그렇게 서둘러 가십니까?”




“어, 잘 만났네.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아직 소식 못 들었는가?”




“무슨 소식 말씀이십니까?”




“형원이가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다네.”




“네? 갑자기 무슨 일로요?”




“얼마 전에 남대문 시장터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데, 무슨 이야기 들은 거 없나?”




“아···.. 그때 옆에 있었습니다.”




“아니, 자넨 그걸 왜 안 말리고.”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리고 그 일본인이 먼저 총을 꺼내 우리 동포를 겁박하였습니다.”




“음···. 우선 급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는 걸로 하지.”




**종로경찰서**




아무런 저항 없이 형원은 경찰차에 올라타 경찰서에 왔다. 그는 현재 아무런 의욕이 없었으므로 지금 이 사건에 대해서도 심각하지 않았다.




경찰차가 종로경찰서 앞마당에 도착해 그는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그때 건물에서 미국인들과 한국 경찰들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는 게 눈에 보였다.




시큰둥하게 보고 있는데 그 뒤로 낯이 익은 일본인 하나가 건물을 나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마지막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의 오른팔, 엔도 총감이었다. 그의 악행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히히덕거리며 그를 호위하고 있단 사실이 너무나 어이없고 화가 났다.




“이 개새끼야! 죽어라.”




그는 곧장 뛰어가 엔도의 얼굴을 가격하고, 재빠르게 상대를 넘어뜨려 깔고 앉아 목을 졸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엔도는 숨을 헐떡거리며 살려달라 외쳤고, 순간 당황하던 경찰들이 정신을 차리고 형원을 발로 차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형원은 망설임 없이 그를 막는 경찰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다른 경찰들이 몽둥이를 꺼내 그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독립군 중에서도 격투기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그였다. 한국인 미국인 합쳐 열 명쯤 되는 상대의 공격을 피해 가며 상대방을 하나씩 굴복시켰다.




그렇지만 처음에 당황했던, 형원을 끌고 왔던 경찰들도 그를 막기 위해 다가서자 상황이 불리해졌다. 그리고 술도 취해있던 상황이라 그의 판단은 빠르지 못했다. 결국 몽둥이에 한 대를 맞고 뒤로 물러섰다. 답답한 마음에 형원이 소리쳤다.




“비켜라. 저 놈이 얼마 전에 서대문에 있는 우리 동포, 우리 가족들을 처형했다는 걸 다들 알지 않느냐!! 내 손으로 저 놈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겠다.”




“그럴 순 없다. 우리는 이분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분한 마음 알겠지만, 협조하지 않는다면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군들이 총을 겨눈 상황이었다. 그러나 형원은 분함이 가시지 않았다.




“니미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을 호위까지 하면서 다녀? 아직 이 경찰서도 정상이 아니구나.”




“무슨 말씀을 그리 서운하게 하십니까. 이렇게 모셔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수사과장 노덕수입니다.”




건물 밖에서 일어난 소란에 급히 나온 수사과장이 말로만 예의를 차리며 형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형원은 이를 무시했다.




“저 총독 놈을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당연히 그의 고향으로 보내려는 것이지요.”




“처벌을 안 하고 그냥 돌려보낸다? 도대체 이건 누구의 결정이요?”




“미국의 결정이고 저희는 그냥 따를 뿐입니다. 이제 일본 사람들을 누구처럼 막 죽이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는 사이 엔도는 호위하는 자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그리고는 형원과 수사과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를 남긴 뒤 경찰서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내가 그들을 죽였다고? 바까야로, 조센징···”




형원은 그를 이렇게 보내는 것이 너무 분하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무엇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수사과장의 얼굴이 너무 낯이 익어 유심히 바라봤다. 노덕수··· 노덕수···




이름은 기억에 없지만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이 날듯했다. 총독부 앞잡이를 하던 놈인 듯 했다. 배신자 놈들 중 꽤 유명했던 놈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사진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포까지 죽이며 일본의 앞잡이를 하더니 이제는 미국의 하수인이 되었구나.’




상대가 자신을 왜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영문도 모른 채 수사과장은 말을 이어갔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지금 미국이 군정을 담당하고 있고, 어찌 되었든 많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였으니, 법적으로 처리를 하자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네. 일본의 지배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이제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네요. 이러려고 차가운 땅바닥에서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어가며 일본 놈들과 싸웠던 건지 살짝 자괴감이 드는군요.”




“무슨 말씀을 그리 서운하게 하십니까? 저희는 지금 자생하기 힘든 수준이고 이를 미국에서 원조해 주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이 말을 똑같이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아··· 맞다. 이완용.”




“뭐 이 새끼야?”




이 말에 뒤에 있던 수사과장의 부하가 화를 내며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갑자기 경찰서 내의 분위기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자 노덕수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저지하였다.




“그만해라. 이분은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신 분이시다. 최소한의 존경을 보여야 할 것 아니냐.”




“과장님, 독립운동은 이자만 한 게 아닙니다. 저희도 그 고생을 하고 같이 나라를 위해 싸웠지 않습니까?”




형원이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일본 앞잡이 놈들이 독립운동이라고?




“아니, 나라를 위해 총 좀 잡으셨단 분들이 여기서 병정놀이를 하고 계셨습니까?”




“뭐야? 너 이 새끼 말 좀 가려가면서 하지? 살인자 주제에 어디서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살인자라니. 우리가 일본 놈들과 서로 죽이고 살리고 한 게 지금 제 인생보다 긴데, 이거 하나에 이렇게 난리 칠 일이요? 독립운동하신 거 진짜 맞습니까?”




수사과장은 겉으로는 형원을 존중하며 대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상대에 대한 한심함과 비열함이 묻어 있었다.




“문제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였고, 그렇게 전쟁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 짓은 명백한 살인입니다. 이곳 미군 측에서도 그렇게 보고 있고요.”




“뭐, 허수아비도 아니고 자꾸 그들이 어쩌네 저쩌네···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 참 잘 어울리십니다.”




“과장님, 대화가 안 되는 상대입니다. 그냥 감옥에 쳐넣으시죠.”




가식적으로 미안한 자세를 취하며 노덕수가 형원에게 말했다.




“우선 죄송하지만, 조사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들어가 계셔야겠습니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송진우 (宋鎭禹, 1890~1945)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언론인 겸 정치가로,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사장을 지내며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과 민족계몽에 앞장섰다. 3·1운동 직후 임시정부 수립을 지원했고,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을 창당해 건국 준비에 주력했다. 그러나 미군정과 이승만 노선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1945년 12월 백범 김구와 회동 후 귀가하던 중 암살당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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