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생각의 전환
**종로경찰서 뒤편**
담배를 피우고 있는 수사과장. 그의 옆으로 한 사람이 조용히 다가왔고 둘은 서로에게 냉소적인 인사를 나눴다.
“깡이 좋으시네요, 아베 경감님. 이렇게 먼 길까지 혼자 오신 겁니까?”
노덕수 앞에 나타난 자는 옛 총독부의 경감으로 더러운 일을 주로 처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런저런 구린 일들로 기존에도 몇 번 둘이 같이 해서 양쪽 모두 마음속으로 각자를 하찮게 여겼다.
“못 본 사이 기세등등해졌구나. 얼마 전까지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놈이.”
“그때랑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오늘 총감님께 손을 댄 놈 말이다. 네가 담당이더구나.”
“네, 맞습니다. 지금 조사 중이죠.”
“총감님이 화가 많이 나셨더구나. 잘 처리해 주면 5만 원을 주겠다 하신다. 네 놈 2~3년 벌이는 될 거다.”
수사과장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나쁜 놈들이 해쳐 먹은 돈이 얼마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냥 수락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이 자리를 어떻게 잡은 건데 그런 위험한 일을 시키십니까? 이제 새 나라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미친놈. 알겠다. 그럼 10만 원. 안 하겠다면 다른 놈을 알아보마.”
노덕수는 금액을 듣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러나 티는 내지 않았다. 그 금액이면 이제 경찰 노릇 그만두고 시골에 번듯한 집 짓고 땅 사서 소작농 주고 떵떵거리면서 살기에 충분하다.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달콤한 상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총감님 부탁이시니···그간 정이라고 생각하고 도와드립죠. 혹시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 조건인가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언제부터 그렇게 합법적인 것만 했다고···.”
“무슨 말씀을 그리 섭하게 하십니까? 무튼 연락드립죠.”
피던 담배를 튕겨 버린 뒤 노덕수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방진 그의 모습이 불편했던 아베 경감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래침을 내뱉었다.
“다들 꼴값들이구나···.”
**유치장**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유치장에서 형원은 코를 골며 세상 태평하게 자고 있었다. 그때, 건장한 남자 둘이 조용히 유치장 자물쇠를 열고 들어왔다.
거기엔 형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중 한 명은 벨트에 총과 칼 등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형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허리춤에 있는 칼을 빼들어 그의 목에 갖다 대고 말했다.
“일어나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잠이나 쳐 자다니.”
형원이 이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를 깨운 건 다름 아닌 범석과 진이었다.
“앗, 사령관님. 바쁘신데 뭘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진이, 네가 모셔온 거야?”
진은 일전의 사건으로 아직 형원이 아주 편하진 않았다. 그가 어떤지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런 질문도 답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혼자만 장난을 친 게 어색해진 범석이 이런 상황을 눈치채고 물었다.
“둘이 왜 이리 어색해? 무슨 일 있었어? 죽고 못 사는 사이 아니었나?”
“아, 아닙니다. 별일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게 뭔 꼴인가. 그러니 내가 우리 부대에 합류하라고 하지 않았나.”
“제가 독립군 생활을 했던 건 일본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복수는 물 건너갔는데 군에 있어 뭐 합니까.”
그의 과거를 아는 범석은 그가 한편으로는 애잔했지만, 일부러 이를 감추고 짐짓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됐다. 딴 말은 됐고, 일단 여길 나가자. 이야기는 다 해놨으니.”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일본 놈이 먼저 총을 겨눴다며. 그걸로 정상참작이 될 거라고 이야기해 놨으니 우선 나가서 근처에서 뜨끈한 국밥이나 같이 함세.”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찰나에 수사과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니, 총사령관님.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당신은···.. 누구?”
“이번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노덕수 수사과장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범석 사령관이 시큰둥하게 그에게 답했다.
“사령관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무리 사령관님이셔도 죄인을 이렇게 함부로 데려가실 순 없습니다.”
“죄인이라뇨? 아직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죄인은 아니지 않소?”
“그 당시 시장에서 저 죄인, 아니 용의자가 죄 없는 일본인을 죽이는 걸 본 증인들이 많습니다. 다수의 증언을 확보해 놓은 상태입니다.”
자꾸 죄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상대에게 짜증이 난 사령관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이 친구는 나라를 위해 십 년 넘게 독립군으로 희생한 애국자요. 그깟 증인들만으로 이 사람을 이렇게 대할 순 없소!”
“네네. 맞습니다. 그 점을 저희도 십분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그러나 이게 미군의 지시라 저희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미군의 지시라면 그 점은 내가 잘 해결하겠네. 걱정 말게.”
수사과장은 이대로 형원을 놓아줄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10만 원을 벌 수 있다. 여기서 5년을 버텨도 그 돈을 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총사령관이란 벽에 막히다니.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냥 미리 죽였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자.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하루만 말미를 주시면, 조사를 빨리 끝내고 집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오. 대신 하루 말고 반나절. 내일 아침 다시 오겠소.”
그러나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진이 말을 돌렸다.
“근데 이상해서 그러는데, 미군정이 이 사건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겁니까?”
“일본은 그들에게 정식으로 항복을 선언하였고, 미국은 이에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도 그들에게 이겼는데, 우리도 일본 놈들을 처벌할 권한이 있는 거 아닌가요?”
노덕수는 자꾸 반복되는 질문이 너무나 귀찮았다. 그래서 한심하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을 이어갔다.
“혹시 누구시죠?”
“지금 그게 중요하신가요?”
진은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이를 쓱 훑어본 수사과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전쟁에 참여를 하지 않았고, 승전국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우리에겐 그럴 권한이 없죠.”
“아, 그럼 우리는 승전국이 아니니 엄밀히 따지면, 일본에 아직 항복 선언을 받은 게 아니네요. 그럼 일본과 우리는 아직 전시 상황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일본인을 다치게 하는 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들은 형원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진을 바라봤다. 놀라고 당황하기는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얼토당토않지만 말이 되는 이 이야기에 수사과장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너무 당황스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다지 묘수가 떠오르지 않자 아직까지 이성의 끈으로 잡고 있던 젠틀함을 놓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미군정청에 계시면 잘 아실 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무슨 애들 말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빨리 조사하고 내일 돌려보내드리겠습니다.”
그때였다. 열 명 남짓의 청년들이 우르르 유치장에 들어와 범석과 진을 포박하였다. 그리고 둘러싼 사람들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갑자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전명운 (全明運, 1884~?)
평안남도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했다.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선 침탈을 꾀하던 친일 밀사 이재명을 권총으로 저격, 해외 첫 의열투쟁을 단행했다. 체포돼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석방되었으며, 이후에도 미주 한인사회에서 독립자금 모금과 항일운동에 힘썼다. 그의 의거는 해외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의열투쟁으로 평가된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