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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Jan 12. 2024

필멸의 방정식(20)

"우리 계획은 소말리아부터 시작입니다."

바티스가 지도를 펴며 말했다. 아프리카 전역이 자세하게 표시된 지도는 회의실 책상을 흘러넘칠 정도로 넓었다. 바티스는 막대기를 들어 한 곳을 짚었다. 아프리카 동부, 황소의 뿔처럼 두껍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이었다.


"소말리아..."


리처드 박사는 조용히 읊조렸다. 일전에 바티스에게 기철과 유진이 소말리아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유진이 함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소말리아는 험한 지역이다. 평생을 온실에서 살아온 연구자와 예술가가 버티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저항군의 표적이 되는 곳이니 그들이 사지 멀쩡하게 돌아오기란 힘들지도 모른다.


"현재 소말리아의 상황부터 브리핑하겠습니다. 랜버본, 자료 보여주세요."


바티스의 요청에 랜버본이 컴퓨터로 보이는 기계를 만지작 거렸다.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손을 가진 사내가 힘겹게 자판을 두드리는 것을 보니 안쓰럽고 우습다. 이내 천장의 빔 프로젝터를 통해 벽면에 화면이 조사되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컴퓨터 모델이 사장된 현재에 21세기에나 사용할 법한 기계들이라니, 오히려 신선했다. 레트로 감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2년 전, 소말리아는 다시금 내전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과거 군벌, 반란군과 정부군의 갈등 상황은 Cade가 개입한 이후 안정되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Cade가 떠나자 다시 내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따로 개입하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소말리아의 민족적, 역사적 갈등이 단순히 자본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록 심각했기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정부군이나 군벌이 Cade의 개입을 일종의 식민지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정확한 사실일 겁니다. 문제는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올웨니 장군이 Cade의 후원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인물이며 Cade에 아주 협조적이라는 것입니다. 올웨니 장군은 실험 재료와 땅을 제공하고, Cade는 그를 후원하는 파트너십이 체결된 거죠."


바티스는 잠시 숨을 돌리고 랜버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랜버본은 자판을 두드려 확대한 소말리아의 지도를 화면에 띄웠다. 바다를 향해 공격적으로 우뚝 솟은 뿔이 조금 섬뜩했다.


"올웨니 장군은 남쪽으로는 버가보, 바라위부터 수도 모가디슈, 그리고 소말리아를 가로지르는 중앙 도로를 점거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아덴만 인근 지역에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모가디슈를 포함한 해안 지역은 올웨니가, 나머지 내륙 지역은 군벌들이 나눠가지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지역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만, 소말리아의 주요 거점을 모두 지배하고 있는 탓에 내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바티스는 막대기를 들어 소말리아 한가운데를 짚으며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반란군을 지원할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 넉넉한 사정이 아니라 Cade 만큼의 물자를 지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보는 제공할 수 있습니다. Cade의 중요 시설이나 방어 시설의 위치를 넘겨 군벌들이 습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우리의 개괄적인 계획입니다."


무모한 계획이다. 리처드 박사는 바티스의 발표를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Cade에 환멸을 느껴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힘을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두렵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숨겨줄 이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Cade 입장에서 소말리아는 작은 나라지만 중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곳이기도 하고 일종의 거대한 실험실이기도 하다. 그런 곳을 Cade가 허술하게 내버려둘리는 없었다. 아마 반란군이 시설에 도달하기도 전에 Cade의 경비팀이 중화기를 들고 찾아가 그들을 박살 낼 것이다. 말 그대로 박살. 이 계획은 말려야 한다.


"바티스, 당신들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Cade는 강합니다. 강한 정도가 아니죠.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기업인데요. 설마 반란군의 열악한 무기로 Cade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바티스는 랜버본과 눈빛을 교환했다. 무언가를 숨기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 두려움, 패배감 따위는 아니었다. 바티스는 리처드 박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Cade가 강대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긴 시간 숨어 지내며 그들의 눈을 피해왔던 것이고요. 하지만 이미 포석을 깔아 두었습니다. 자세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해 주세요. 저항군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하는 일이라 함부로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다만..."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주변을 눌렀다. 박사에게 말을 아끼고 싶지만 언질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박사님도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계획은 박사님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전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니까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사님이 누군가를 만나고, 영향을 주며 펼쳐진 인과의 세계가 수렴되어 하나의 '해'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지요.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박사님 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그 자'가 허락한 사람이 아니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우리 계획은 성공할 것이고 박사님은 세계에 아주 중요한 인과를 가져온 사람입니다. 그건 이미 정해진 사실이에요. '증명'되었죠."


인과? 해? 증명? 무슨 말일까. 그리고 '그 자'는 대체 누구일까. 바티스가 리더가 아니었나. 그녀는 마치 모든 일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말했다. 더 정확하게는 '이미 일어난 사실'을 말하듯 이야기했다. 박사로서는 도저히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실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이 또한 이미 증명된 일입니다."


그녀의 얼굴은 단호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이. 박사는 하는 수 없이 궁금함을 삼키며 다른 것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계획이 성공한다면, 아니 당신의 표현대로라면 성공하겠지요. 그러나 거기에는 기철과 유진이 있습니다. 제 제자이자 친구들입니다.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내전이 격화될 텐데 그들은 어찌합니까? 그들도 '그 자'의 계획에 들어있습니까? 저로서는 기철과 유진을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이미 소중한 친구를 잃기도 했고요."


"걱정 마세요. 그들도 이미 '증명'된 사람들입니다. 물론... 대의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니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요. 하지만 '증명'에 따르면 여러 가능성 중 그들이 함께할 확률은 100퍼센트입니다. 이 정도만 말하겠습니다. 자세한 계획은 앞에 놓인 계획서를 참고하셔서 각자 준비하시면 되겠습니다."


바티스는 그렇게 말하며 회의장을 나갔다. 사람들도 그녀를 따라 우르르 몰려갔다. 박사는 걱정과 의문이 휘몰아쳐 도통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채로 홀로 회의장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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