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신 Sep 30. 2024

상실, 또 다른 모험 『메이블 이야기』

너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없어

 친구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남자가 ‘너를 보면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는 말로 친구 마음을 가져갔다. 남자가 친구를 점점 보호자처럼 의지했다. 친구는 정말로 그 남자의 엄마가 되었다. 터무니없는 요구에 친구는 지쳐갔다. 당연히 끝이 좋지 않았다. 

 내가 잃은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까? 어느 정도 위로가 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이 누군가의 대신이 될 수 없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누군가의 이기심을 동정할 필요 없다. 안쓰러움이 사랑으로 감싸진다면 아주 잠시다.

 사랑은 희한하게 아프고 나서 후회한다. 같은 실수를 다시는 안 하리라 다짐하지만 또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 후엔 모든 사람이 그런 것 마냥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

 나는 헤어짐이 두렵다. 가족과 친구들, 나와 이어진 모든 관계에서 두렵다. 희한하게 누군가와 인연을 맺으면 상대방이 나와 거리를 둘까 봐 내가 먼저 거리를 뒀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친밀한 관계가 되면 친구든 연인이든 나를 좋아하는지 자주 확인했다.

 내가 누군가를 집착한 이유는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와 멀어지고 세상과도 작별한다. 만남의 이면에는 헤어짐과 상실이라는 다른 면이 있다.     

 

 상실은 또 다른 모험이라는 걸 알려주는 책이 있다. 『메이블 이야기』는 매를 훈련시키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어려서부터 새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아버지를 잃고 나서 참매, 메이블을 키우며 상실을 달랜다. 참매는 아주 예민하고 야생성이 강해 길들이기 어려운 동물이라는데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메이블이 먹이를 찾을 때 저자를 외면해 힘들어하는 장면에선 메이블이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나와는 달리 저자는 이미 매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길들이기에 실패하면 언제든 제 갈 길로 날아갈 매를 선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모험이자 상실이었다.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서 매를 훈련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매가 오래전에 죽은 조상들의 땅을 활보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내게 역사는 소용없었다. 시간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내가 매를 길들이고 있는 것은 시간을 다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_헬렌 맥도널드 『메이블 이야기



 시간이 갈수록 저자는 매와 다른 삶으로 살아가야 편하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손을 보며 매의 발톱에 긁힌 흉터를 봤다. 메이블이 만든 게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아물게 도와준 거라 느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픈 것은 상대가 나와 같은 삶을 살길 원해서다. 얼핏 보면 우리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처음엔 비슷한 점만 보여 가까워지다가 점점 다른 점을 보게 된다. 기대할수록 실망이 커지고 상처가 깊어진다. 너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걸 아는 순간, 서로 할퀴고 상처를 낸다. 그땐 아무것도 없던 상태로 되돌리기엔 상처가 선명해진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더라도 상실감이 없지는 않다. 아픈 사랑도 흉터가 남는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살다 보면 세상이 항상 새로운 것들로 넘쳐나기를 바라는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온다. 삶이 구멍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 부재, 상실, 거기 있었는데 이제는 없는 것들. 그리고 또 깨닫는다. 그 구멍들을 피해 가며 구멍들 틈새에서 성숙해져야 된다는 것을. 비록 전에 그것들이 있던 곳에 손을 뻗으면, 추억이 있는 공간이 가진 특유의 긴장되고 빛나는 아련함이 있긴 해도. _헬렌 맥도널드 『메이블 이야기』



 사람들의 아픔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맨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사람도 겉으로 티가 나지 않을 뿐 비슷한 고뇌와 슬픔이 있다. 누구나 마음속 어두운 이야기를 가지고 살고, 잊기 위해 겉으로 아름답게 포장하기도 한다. 절대 잘못되었거나 나쁘지 않다. 누구나 마음에 크고 작은 구멍이 있고 감추기에 새로운 관계에 더 다가갈 수 있다.  


 야생동물 참매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의 상실을 다른 사람이 채우지 못한다. 그러나 도피처를 만들고 싶다. 상실감에서 도망간다면 잠시 잊을 순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새 더 크게 아파온다.

 감정을 피했다면 언젠가 마주하게 된다.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바로 맞닥뜨려야 한다. 그러면 마음 한 편에 있다가 어느 순간 들춰내도 아프지 않게 된다.


 봄에 꾸었던, 매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꿈을 떠올렸다. 꿈에서 나는 매를 쫓아가고 싶었다. 같이 날아서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매라고 생각했다. -겨울 나무숲에 높이 앉아 있는, 다른 세계로 사라질 수 있는 심통 사나운 참매 중 하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아무리 나 자신을 많이 깎아내도 나는 매가 아니었다. _헬렌 맥도널드 『메이블 이야기』



 새로운 관계에 필요한 건 용기지만 사라진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와 이어진 끈이 끊어졌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물론 추억으로 되새길 수 있지만 눈앞으로 불러올 순 없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다. 사랑했던 사람을 잘 보내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헤어짐이 두렵다고 사랑에 망설일 필요 없다. 누구나 언젠간 이별한다. 오로지 너와 내가 아는 일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나의 시간은 이어진다. 어쩌면 다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모험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저자 헬렌 맥도널드 / 출판 판미동


이전 19화 어제와 내일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