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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글

by 이육공

유용한 글이 넘치는 이곳에서 무용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냥 내뱉는 대로 말이 되는 그런 글을. 아무도 읽지 않아도 좋다면서 쓸모없는 글을 마구 생산한다. 세상은 효율과 유용함으로 포화되었다. 그곳에서 내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나의 자리까지 사라지는 걸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을까? 그런 두려움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무용한 것을 사랑한다. 우리는 그걸 여유라고 칭할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무용한 것들은 나의 생을 연장한다. 찰랑이는 물, 어디에도 쓸 일 없는 잡다한 지식들(이를테면 사무라이 개미가 곰개미 군락을 침탈하고 이용하는 방법이라든지), 붙일 곳도 없는 예쁜 스티커, 우스꽝스럽게 생긴 낙서, 취향에 맞는 시집, 아직 읽지도 않았으나 책장을 차지한 있어 보이는 책들, 잠깐 멍 때리는 시간, 노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비냄새, 들꽃, 지나가는 동물, 언제 받은 지도 모르겠는 구겨진 쪽지 따위의 것들. 돈 버는 데엔 하등의 쓸모도 없는 그런 것들에 골몰할 때 도리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무용과 유용의 경계가 무슨 소용인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에 질려버렸다. 일신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가치를 증명해 낸다. 그렇게 가격이 매겨진 뒤에는 앞으로 나의 가치가 하락할까 걱정해야 하는 생이다. 그 누구도 어릴 적 그런 삶을 꿈꾸진 않았다. 동화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인생만을 보여줬다. 주인공이 어떤 방법과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걸까? 뭐 결국 대부분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쳇바퀴 속, 물욕을 버리지 못하는 바보 같은 어른으로 자랐을 거다. 모두가 자신의 유용함을 증명하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든다. 끔찍하다. 나는 생존 이상을 원한다. 생존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들, 내가 궁리하고 싶은 것들은 언제나 그따위의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뭔데?'라고 물어보면 명확히 답할 수 없는, 그런 모호함으로 삶에 색을 칠한다.


그래서 무용한 글만 쓴다. 내 글 어디에도 돈 되는 정보라고는 없다.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 꿀팁도 없다. 그냥 내뱉어진 단어가 두서없이 떠돌아다닌다. 때로는 내가 한 말을 휙 뒤집어 버릴 때도 많다. 모두가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일리는 있다. 아직도 시집 코너에 서서 시를 읽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문학의 한 구절을 곱씹으며 생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빗소리 ASMR을 들으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사람과, 계절의 냄새를 맡으며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사람들을 안다. 매일 쓸데없는 지식이 쌓이면 공유하는 친구가 있고, 고양이 냄새를 최고의 낙으로 삼는 동생도 있다.


왜 무용한 것들이 사랑스러운 건진 나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수많은 무용함이 자리를 잃지 않은 채 남아있길 바라며 오늘도 무용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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