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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웃게 하는 것들은

동시에 나를 울게 만들지

by 이육공

웃음이 눈물이었다면 얼룩덜룩 오래도록 아롱졌을 텐데, 왜 웃음은 소리라서 허공에 흩어지고 슬픔이 눈물이라서 온 곳에 번지는 걸까? 말려도 말려도 우그러진 흔적이 남는 걸까?


슬픔과 우울함이 두통과 위경련, 열감을 동반하여 일상에 끈끈하게 남아있다면 기쁨과 즐거움은 너무 빠르게 휘발된다. 기쁨의 잔상이 오래도록 기분에 남아있길 바라지만 금세 '그저 그럼'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영어로 말하면 'Nothing special'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순간은 찬란히 빛났는데 말이다.

나를 웃게 하는 것은 작은 것들이다. B급 코미디, 털 달린 동물, 맛있는 밥, 친한 친구들과의 만남, 토끼풀 군집, 소소한 유머, 예기치 못하게 발견한 만 원에 푼수처럼 웃을 수 있다. 반면 나를 울게 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단 한 가지, 상실이다. 나의 슬픔은 언제나 상실에서 비롯된다.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고독 따위의 것들은 상실에 대한 아픔이나 두려움에서 파생되었다. 종국에는 나를 웃게 하는 것들이 나를 울게 만든다.


기쁨, 즐거움은 행복과 다르다. 전자는 스쳐 지나가는 호르몬의 산물이라면, 후자는 불행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다르게 여길 수 있지만 어쨌든 내게는 그렇다. '특별할 것 없음'은 안정이자 행복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했을 뿐, 특별할 것 없는 상태가 행복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답을 망설인다. 특별할 것 없으니 행복한 게 맞는데 왜 나는 바로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없나. 왜 나는 자주 초조함과 불안 속에 있나. 내 삶의 무엇이 그렇게 불안정한 것인가. 주거환경, 근무환경 뭐 그런 생존과 관련한 것들로 인해서일까? 모든 것이 충족되면 나는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뢰도 높은 기관의 정식 검사에 따르면, 나는 감정 에너지가 현저히 낮은 사람이다. 우울함도, 즐거움도, 외향성도 따질 것 없이 모든 수치가 평균 이하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럴까? 청각화 되는 기쁨은 쉽게 휘발되는 반면, 작은 슬픔으로도 온몸으로 울 수밖에 없다. 계속해남는 여운 속에서 더 이상 슬프지 않아도 불행도 행복도 느끼지 못하며 잠시 젖어있는 것이다.


에너지가 적고 불안정한 나는 늘 도파민을 좇는다. 순간적인 기쁨을 얻으면 내가 좇는 이 순간순간이 뭉쳐 행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이제는 반대로 생각하려 한다. 따지고 볼 때, 누군가 '불행해?'라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씩 우울할 수는 있어도, 확실히 불행하지는 않다. 정말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 불행할 건 없다. 아마 내일도 출근하고, 점심 메뉴 확인하고, 초과 근무를 조금 하다가 내 영역 속의 사람과 함께 저녁을 먹겠지. 먹고 난 뒤에는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서 씻고 잠들 거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그렇지 이게 행복이겠지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여전히 누군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답을 망설이겠지만, 그런 순간까지도 행복의 일환이라 여기면서 다시 눈을 감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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