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언제부턴가 미룬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만히 듣다 보니 가사가 의미심장했다. 나는 아들에게 노래가 좋다고 했고, 엄마의 반응에 신난 아들이 유튜브영상을 틀어줬다.
미룬이는 메타코미디 소속의 이제규라는 개그맨이 발매한 음악이다. 2024년 5월 1일에 발매된 곡이며 멜로디는 동요풍이지만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세상 가장 즐겁던 어린이는 시간이 지나 무언가를 시작도 못하고 그러 벌린 일을 끝내기만 하는 바쁜 어른이, 사실 어른이라고 하기에도 그조차도 못하고 아무것도 안한 미룬이"가 되어버린 인생을 비관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부르기엔 너무 어른스런 내용이었다.마치 내가 부르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 후회하며 살기에는 남은 인생이 길지 않다.
정신차려보니 9월이다. 어영부영 지내다보면 24년도 금방 지나간다. 올해 목표가 소설로 등단하기인데, 한 편의 소설도 완성하지 못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
마침 9월부터 아이들 셋은 매일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중2인 딸이 일 년동안 키가 자라지 않아서 아빠가 내린 특단의 조치다. 저녁을 먹고, 30분정도 집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한다. 나도 계획을 세웠다.
나는 전업주부다. 방학 동안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느라 내 시간이 없었다. 성공한 작가들을 보면 아이들을 재우고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고 하는데 나는 9시만 되면 졸기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편한데, 새벽운동하느라 글쓰기를 못했다.
무엇보다 짜투리시간에 독서하던 습관이 유튜브를 보면서 망가졌다. 틈만 나면 유튜브영상을 본다. 쇼츠는 짧아서 몇 개만 보고 끝내야지 하지만 쇼츠만큼 시간을 잡아먹는 게 없다. 글을 쓰려면 유튜브를 끊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와 독서, 걷기와 근력운동, 금주와 유튜브금지를 아이들에게 선포했다. 여름에 덥다는 핑계로 맥주와 하이볼을 저녁마다 마셨더니 막둥이 출산 전 몸무게에 근접했다. 건강검진을 받기 전에 체중조절이 필요했다.
표를 만들어서 거실 한쪽에 있는 칠판에 붙였다. 이렇게 만들어놔야 한다. 한 달동안 부지런히 채워나가야지. 적어도 아이들에게만은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기억하자. 더이상 미루면 안 된다. 후회하는 어른은 매력없다. 완벽하지 않을까봐 시작을 못 한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난 미룬이가 아니다. 나는 뭐든 하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