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의 힘
우리 가족은 요즘 새로운 운동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다. 큰 딸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6시 40분에서 7시 사이에 집 근처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40분 정도 운동하는 것이 그것이다. 딸 둘은 줄넘기 600개씩, 아들은 이단 뛰기 100개를 하고 난 후, 운동장을 걷거나 뛰고, 아들은 캐치볼을 한다. 우리 부부는 따로 또 같이 걸으며 아이들이 잘하고 있나 곁눈질을 한다.
처음에는 지쳐서 하기 싫다던 중2딸이 이제는 엄마랑 같이 걸어서 좋다며 한 바퀴만 더 돌자고 할 때도 있다. 막둥이는 가끔 하기 싫다고 찡찡대고, 아들은 캐치볼만 하면 안 되냐고 볼멘소리를 내지만, 우리 집 독재자인 내게는 어림없는 소리다. 정해진 것을 다해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못 박고, 나머지 불만은 안 들린 척한다.
걷기만 하던 내가 어느 날 줄넘기를 했다. 열 개를 했나, 숨이 찼다. 다음 날에는 스무 개쯤 했던 것 같다. 유난히 큰 딸의 불만이 가득한 날, 100개가 남았다는 말을 듣고, 대신 뛰어주겠다고 했더니 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딸 앞에서 숨을 참고 줄넘기를 했다. 뛰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줄을 돌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줄이 빨라지고, 덩달아 나도 빨리 뛰어올랐다.
어느 순간 600개를 마친 내가 숨을 몰아쉬며 딸에게 말했다. 줄넘기가 힘든 거구나. 딸이 그렇지? 하는 눈으로 쳐다보길래 이렇게 힘든 걸 매일 하고, 걷기까지 하다니 너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딸은 그 정도는 아니야. 하며 줄을 넘겨받았다. 그날 우리 모녀는 둘 다 줄넘기 600개를 하고 손을 꼭 잡고 집에 왔다.
다음 날부터 나는 운동장을 돌기 전에 줄넘기를 했다. 아이들과 나란히 서서 뛰었다. 자긴만의 속도로 조용히 맘으로 만 숫자를 세며 줄넘기를 하다 보니 600개가 700개가 되고, 어느 날인가 800개를 하고 난 후, 문득 천 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줄넘기를 못 한다. 아이 셋을 낳은 엄마들은 공감할 수 있는 말 못 할 고민으로 줄넘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았다. 처음에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찔끔찔끔 나오는 것이 신경 쓰였는데, 어느 날부턴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아랫배에 힘을 딱 주고 뛰었더니 뛸만해졌다.
어제 나는 줄넘기 1480개를 했다. 이번 주부터 천 개씩 뛰기로 했는데, 삼겹살을 과하게 먹었더니 힘이 남아도는지 천 개를 뛰어도 지치지가 않았다. 줄넘기를 마친 아이들이 캐치볼을 하는 걸 보며 뛰었다. 운동을 위해 구입한 샤오미워치가 줄넘기 횟수를 세준다. 처음에는 30분만 채우자 했는데, 나중에는 200칼로리를 찍고 싶었다. 열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뛰다 보니 1480개였다.
운동 인증방에 줄넘기인증사진을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반응이 뜨거웠다. 나는 그만 어깨가 으쓱해져서 일일이 톡에 답하며 실실거렸다. 나도 내가 이렇게 뛸 줄 몰랐다. 그래서 좋다.
운동 인증방의 방제는 "오늘도 나는 성공한다"이다. 우리는 매일 운동인증을 통해 하루에 한 번 자신만의 성공을 인증하고, 축하한다. 예전에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크고 무거웠다. 성공을 갈망했고, 동경했으며 성공을 쫓아다니다 실망하고 좌절했다. 성공을 남이 우러러보는 것, 모두 다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게 성공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였고, 닿으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거였다.
그러던 내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누군가의 위에 서 있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한 성공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매일 운동하고, 글을 쓴다. 어제보다 줄넘기를 하나 더 하면 성공이다. 자기 전 생각했던 것을 글로 쓰면 그것도 성공이다. 이렇게 매일 가다 보면 진짜 괜찮은 나를 만날 수 있다. 매일 성공하는 내가 좋다. 내게 만족하는 순간이 오면 마음은 충족되고, 표정은 밝아지며, 아름다운 세상이 보인다.
어렸을 때는 상을 타고 박수를 받고 싶었다. 돋보이는 게 좋아서 잘 알지 못해도 손을 들었다. 목소리가 크면 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러서는 것은 비겁한 일이고, 말이 없다는 것은 말을 못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이는 것에 충실하다 보니 비교가 일상이고, 질투가 따라다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인간이 되는 과정일까? 지금 나는 내가 좋다. 눈이 나빠서 얼굴의 잡티나 주름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생각보다 말이 더디게 나오다 보니 말을 고를 수 있어 좋다. 허리가 아파서 어기적거리며 걷지만, 빨리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사라져서 좋다. 멀리 있는 건 못 보지만, 눈앞의 먼지를 쓸어낼 여유가 있어 좋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천지개벽이 아닌 이상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이 필요하다. 매일 한 시간이 넘게 운동하고, 글을 쓰고, 집을 쓸고 닦으며,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집중한다.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나만의 작은 성공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성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