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일어서면 그만
오늘은 동서문학상 발표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오랜만에 보왕삼매론과 일상발원문을 읽으며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당선된 작가들은 모두 딴짓하고 있다 전화를 받았다는데, 간장종지보다 못한 나는 9시부터 동서문학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10시에 발표결과가 나왔다.
2년에 한 번 여성들만 참가할 수 있는 동서문학상에 처음 도전하며 나는 감히 금상을 노렸다. 대상까지는 아니어도 당선과 동시에 등단자격이 주어지는 금상을 김칫국으로 마셨다. 소설, 시, 수필, 아동문학에 총 18,629편이 접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은상이라도 좋다고 했다가, 문득 내 글이 그렇게 좋은 것 같지만은 않아서 가작이라도 받았으면 한 것도 잠시 맥심상이라도 좋으니 이름이라도 올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찾았다. 대학발표처럼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손가락을 짚어가며 이름 하나하나를 짚어내려 갔지만
없었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실망해도 될까? 나는 내 작품에 최선을 다했을까? 동서문학상에 응모하기 전에 멘토프로그램에 소설을 보내고 소설가들의 자문을 받았다. 그때, 소재가 참신하고, 흥미 있다는 말에 고무되어 뒤에 달린 문제점을 흘려보냈다. 술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자만하여 문장을 다듬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데 급급했다.
나는 읽고 싶은 글이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을 썼다.
tvN 드라마 <정년이>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정년이가 패트리샤에게 노래를 배울 때 일이다. 패트리샤는 정년이에게 대중가수는 노래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뭔가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리천재인 정년이는 한 번 들은 노래를 기가 막히게 따라 부르지만 그것은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패트리샤는 성공한 가수가 되려면 대중들이 첫 소절만 들어도 정년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노래에 자신만의 색을 입힐 것을 주문한다.
좋은 책을 읽고, 필사를 하다 보면 소설가의 글이 내 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옮겨 쓰는 것만으로 문장이 내 것이 된 것 같아 고개에 힘이 들어간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말, 본 문장을 가져와 글을 썼다. 짜깁지는 퀼트가방을 만들 때나 필요할 뿐이다.
나만의 글을 써야 한다.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글, 쓰고 나서 후회가 안 될만한 글. 내가 못 마땅한 글이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내 글을 쓰되 저만치 거리를 두고 쓴다. 하고 싶은 말은 숨기고, 독자가 궁금하게 만든다. 끝까지 읽게 만들려면 재미와 감동을 적절히 버무려 맛깔난 글을 써야 한다. 알면서 못 쓰니 답답하지만, 적어도 문제가 뭔지는 알았다.
딱 오늘 하루만 슬퍼해야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나는 또다시 하얀 종이와 씨름할 것이다.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버텨서 살아남은 사람이 이긴다. 더 물러설 곳도 없다. 가늘고 길게 버텨봐야지. 포기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