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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26. 2024

꿈많은 베짱이의 하루

7월부터 10월 26일인 지금까지 일주일에 5번씩 운동하고 있다. 유튜브영상을 보며, 홈트 하고, 만보 걷기를 하는데, 살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누군가 먹는 걸 줄여봐.라고 했다. 과자나 빵은 원래 잘 안 먹고, 고기 먹을 때 고기만 먹는다. 밀가루를 먹으면 속이 거북하고 소화가 안 돼서 멀리한 지 꽤 됐다. 는 말을 했더니 그럼 빠질 텐데. 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문제는 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저녁을 준비하며 싱크대에서 맥주 한 잔씩 하던 게 습관이 됐다. 저녁밥을 먹지 않는 대신 술을 마시고 잤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속상한데 말할 사람도 딱히 할 말도 없어서 술과 함께 속으로 삼켰다. 꾹꾹 눌러 담았다.



운동하니까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저녁마다 먹다 보니 체중계의 숫자가 계속 올라갔다. 겁이 났다. 갱년기가 오면 살이 찐다는데, 나이가 들면 살을 빼기 힘들다고 하는데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요란하게 울렸다.


용을 써도 끄떡없던 체중이 살짝 바뀐 건 줄넘기를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나서였다. 처음에는 줄을 돌릴 때마다 몸이 퉁퉁거렸다. 물이 든 공처럼 무겁고 큰 소리가 났다. 줄넘기 백 개를 하면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잠깐 쉬고 다시 백 개만 하자 했는데, 600개를 넘기자 700개가 하고 싶었고, 800개가 되자 이왕에 하는 거 천 개를 채우고 싶어졌다. 


 어떤 날은 숫자보다 30분 동안 하자. 하고 어떤 날은 200Kcal를 채우자 한다. 줄넘기를 시작하면 힘들다고 아우성치던 몸이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가볍게 뛴다. 줄넘기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면 초반에 아무 생각 없이 덤빌 때는 뛸 때마다 왼쪽 엉덩이가 아팠다. 지금은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며 몸을 풀어준다. 마음을 풀어주는 것만큼 몸을 잘 달래준다. 배에 힘을 주고, 손목은 가볍게 돌린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난다. 가볍게 뛴다. 


해마다 이맘때 심한 우울이 찾아왔다. 올해도 아무것도 안 했구나. 하는 자괴감에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연초에 세웠던 소설가로 등단하기는 아직 안 됐지만, 치열하게 운동하며 보낸 여름과 가을의 기억이 있다. 매일 줄넘기의 개수를 적으며 스스로에게 장하다고 칭찬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내 이름을 혼자 부르고, 가슴을 톡톡 치며 **아 잘했어. 너 정말 대단해.라고 말하면 내 목소리에 내가 부끄럽고 좋아서 웃음이 난다. 


 글로 풀어내든 술로 삼키든 줄넘기를 하며 털어내든 뭐든 하다 보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텅빈이가 된다. 욕망도, 미움도, 원망도, 사랑도, 애증도 없어진 그곳에 오롯이 순수한 내가 들어간다. 혼자 있으되 외롭지 않고, 함께 하는 순간에 감사할 줄 알며, 어떤 일이 생겨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어렸을 때는 마법사의 지팡이가 탐이 났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원하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를 만나고 싶었다.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마법사의 지팡이만 만나면 나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마법사는 현실에 없고, 나를 바꾸는 건 나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매일 조금씩 나가는 사람이 좋다. 줄넘기를 처음부터 1000개 하는 사람보다 처음에는 백 개도 못 했는데, 매일 열 개씩 늘려가는 사람을 응원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하는 게 좋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능숙하게 할 수 있다. 


일 년에 한 번 나무는 나이테를 만든다. 나이테가 많아질수록 나무의 기둥은 크고 단단해진다. 비바람에 지지 않고, 홀로 견디는 법을 시간에게 배운다. 내 안의 나이테는 점점 두꺼워지는데, 나는 그에 걸맞게 성장했을까? 잘 모르겠다.


 새벽에 일어나 보왕삼매론과 마음 다스리는 글, 일상발원문과 행복한 가정을 위한 발원문을 읽는다. 어제 쓰다 만 글을 다듬거나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일어난다.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꿈이 많은 베짱이다. 누군가는 왜 꿈만 꾸냐고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말한다. 나는 꿈꾸는 이 시간이 좋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꿈이 많은 베짱이는 오늘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베짱이의 노래는 작고 여려서 누군가의 귀에 닿지 않는다. 그래도 부른다. 노래 부르는 것이 좋으니까 그것밖에 할 게 없으니까.


꿈 많은 베짱이의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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