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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07. 2024

공든 탑

7월에 운동방에 가입하고 매일 운동인증을 올렸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은 에어컨을 켜고, 빅씨스언니와 근력운동을 했다. 날이 선선해지자 하루 만보 걷기를 하며 체력을 다졌다. 근력운동을 시작하고 두 달쯤 지나자 운동장을 세 바퀴연속 뛰어도 지치지 않았다.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이 자꾸 집에 가자고 해서 돌아온 적이 많았다. 할 때는 힘들어도 효과는 확실한 게 운동이라는 걸 새삼 깨달으며 계속 운동하자고 마음먹었다.


 체력이 좋아지자 글쓰기에도 속력이 붙었다. 어떤 날은 A4 4장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이러다 장편소설 쓰는 거 아냐?

혼자 신났다. 글의 내용보다 뭔가를 쓴다는 자체가 좋았다. 일단 생각날 때 많이 쓰고 나중에 고치자 마음먹고, 썼다. 그냥 썼다.


 9월에는 추석과 할머니제사가 있다. 예전처럼 많은 손님이 오진 않지만, 우리 집에서 하는 거라 신경이 쓰인다. 하루에 하나씩 정리하자 마음먹었다. 냉장고와 유리창, 현관을 청소하고, 하는 김에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물건들을 버렸다. 시간과 공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그럴 때도 운동과 글쓰기를 빼먹지 않고 했다. 두 시간 독서도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시간이 남아돌 때보다 훨씬 많은 글을 쓰고 읽었다. 잠은 여전히 많이 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전과 달라진 건 자투리시간에 유튜브나 티브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의 나는 화장실에 갈 때 책을 들고 갔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게 되면서 유튜브에 빠져들었다. 유튜브채널을 보다 요즘은 쇼츠를 본다. 딱 십 분만 봐야지. 하는데 정신 차려 보면 30분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 9월 목표에 유튜브보지 않기를 집어넣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투리시간에 청소하고, 설거지를 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집안일을 했다. 한 시간 글 쓰고 20분 동안 부엌 정리하기. 다시 한 시간 글 쓰고 거실청소하기. 쉬는 시간에 유튜브를 보지 않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일부러 작정하고 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오전에 도서 포스팅을 두 개 한다. 하루, 이틀 안에 책을 한 권씩 읽는다. 소설을 쓴다. 근력운동을 하고, 저녁에 아이들과 운동장을 뛴다.


 완벽했다. 스스로 뿌듯하기도 했다. 늘어진 시간 없이 지내는 내가 대견했다. 그래서 자만했다. 나름대로 루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만하는 순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섣부른 자만은 끝없는 추락을 불러온다. 한순간의 방심이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


 찬바람이 불자 큰아이의 알레르기 비염이 재발했다. 이틀 동안 열이 오르고 힘들어하는 아이옆에 있느라 운동을 못 했다. 큰 딸이 학교에 가자 몸이 으슬으슬한 게 눕고만 싶었다. 글쓰기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일어나는데 악 소리가 났다.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스트레칭하다 일어났다. 기분 나쁜 통증이 허리 근처에서 느껴졌다. 시험공부하는 큰 딸 옆에 앉아 글을 쓰다 일어서는데, 또 악소리가 났다.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녔다. 남편이 그걸 보더니 꼭 할머니 같다고 해서 기분이 나빴다. 나는 아파죽겠는데, 걱정 하나 없는 남편은 남의 편이었다. 아이들 픽업이 끝나고 차에서 내릴 때도 똑같았다. 허리를 펴려고 하면 허벅지까지 저렸다.


 핸드폰을 들고 누웠다. 다리를 벽에 올리고 누워 쇼츠를 봤다. 루틴이고 뭐고 앉아 글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튜브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안 쓰니 신경쓸 일이 없어서 좋았다. 그런 줄 알았다. 과연 그럴까?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는데 느낌이 달라졌다. 개운까지는 아니지만 가볍게 일어났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안 해도 괜찮아와 힘들어도 하자가 싸웠는데, 하자가 이겼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내가 불편해서 못 견디겠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작가님들을 만난다. 졸작이든 뭐든 쓰고 있어야 기회가 온다.


 생각하는데, 허리가 또 찌르르거린다. 정신이 먼저일까? 몸이 먼저일까? 몸뚱이의 거센 저항을 뚫고 과연 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쇼츠라는 강력한 유혹을 물리치고 오늘 세 시간 글을 쓴다면 내일도 할 수 있다.

 일어나서 오전 11시까지 유튜브를 한 번도 보지 않은 나를 칭찬한다. 글로 썼으니 이제는 실천할 때다. 이제 알았다. 나는 읽고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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