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혈과 황차
살청과 유념, 그리고 건조라는 이미 다 알려진 차(茶) 가공 공정에 현종은 좁고 더운 토굴 속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민황(悶黃)이라는 과정을 유념(揉捻) 작업 후에 추가함으로써 황차를 만들어냈다. 살청(殺靑)과 유념을 마친 찻잎들을 벽돌 크기로 모아 천이나 종이로 싸고 그걸 따뜻한 곳에 두면 찻잎들은 황색을 띠는데 이런 찻잎을 물에 타 마시면 녹차와는 달리 떫은맛이 없고 부드러운 맛이 나왔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 차를 마시면 어지간한 병도 낫는다는데 있었다. 찻잎들을 벽돌 크기로 모아 천이나 종이로 싸고 그걸 따뜻한 곳에 두면 찻잎들은 찻잎들 자체가 가진 수분과 주위의 따뜻한 온도가 어우러져 벽돌 모양으로 모아진 찻잎들 안에서 미생물들이 자라게 되는데 그중엔 페니실린을 만드는 푸른곰팡이도 있었다.
황차 제조에 필요한 최소한의 민황(悶黃) 과정을 거치게 되면 페니실리움이 효모(酵母)와 흑국균(黑麴菌) 다음으로 찻잎에 많이 들어있는 미생물이 되어 있었다. 황차에 거란인들을 포함해 전 세계인들이 열광한 건 바로 그 차에 있는 페니실린 성분 때문이었다. 연개소문과 당나라 편에서 자세히 논하겠으나 고구려가 실크 로드 무역 상방(商坊)들의 지원을 받은 수(隋)와 당(唐)에 의해 그토록 집요하게 침략당했던 이유는 목단강(牧丹江)에서 만들어지는 황차 때문이었다. 모란강(牡丹江)이란 이름도 황차를 만드는 강이란 뜻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고려사(高麗史)는 현종이 복원한 황차 제조 기술을 양창수렴법(養倉收斂法)으로 기록했다. 고려는 황차로 인해 문종 12년(1058)에 이르면 이미 “예악(藝樂)과 문물이 흥한 지 오래라 상선(商船) 왕래가 끊이지 않고 진귀한 보물이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에서 도움받을 것이 없는” (고려사 기록) 상태가 되었다. 선발효차(先醱酵茶)인 황차는 쉽게 변질되는 녹차(綠茶)와 달리 오랫동안 먼 길을 변질 없이 수송(輸送) 할 수 있는 진귀한 차(茶)였다. 당시 황차는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에서 약(藥)으로 판매되었다. 송나라 철종의 대고려 투자 결정은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정책이었다.
황차는 초원로와 실크 로드를 통해 운송되기에는 최적화된 차였다. 실크 로드를 오가는 캐러반(Caravan)들에게 녹차(綠茶)는 수분과 습기, 온도 통제에 언제나 신경을 써야 하는 최고급 상품이었다면 황차(黃茶)는 그저 다른 화물들과 똑같이 조심만 하면 되는 최고급 상품이었다. 낙타와 말, 나귀의 등에 실려 운송될 수 있도록 포장된 황차는 캐러반(隊商)들에게는 최고 최대의 이익을 보장하는 상품이었다. 그런 황차가 어느 순간부터 원하는 만큼 물량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공급량이 주문량에 비해 모자라는 것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상황은 예전과는 달리 사뭇 심각할 정도로 공급이 모자랐다. 원인은 해상무역파들이 선박을 통해 황차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백자 때문이었다. 550년부터 577년까지 27년 간만 존재했던 북제라는 나라에서 개발한 자기였다. 북제는 그 죄로 멸망당해야 했다. 진상(晉商)과 소그드 상들로 이루어진 실크 로드 무역 상방(商坊)들이 설정해 놓은 금지선을 해상 무역파가 백자를 이용해서 넘어선 것이었다.
※ 표지 사진 출처: 다향 블로그 - 중국 호남성 농업 대학교의 민황 과정 미생물의 종류와 수량 분석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