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괴롭지만, 꾸준히 상담을 받으면서 기분은 많이 좋아졌다. 잠도 잘 자고, 자살 사고도 없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다가 감정에 매몰되기 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회피가 전혀 아니라곤 할 수 없고, 지식화로 감정을 억누르려는 시도도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개인으로서 일상은 회복했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되고, 나는 이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브런치를 오랜만에 들렀고, 문득 수면제에 대해 적어보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니 이토록 오랜 애증의 대상인데, 한 번도 제대로 세레나데를 부른 적이 없더라.
나는 10년 넘게 수면제를 먹었다. 1년 이상 유지한 적도 있고, 1년 이상 끊은 적도 있지만 총 햇수로 따지면 그러하다. 짧든 길든, 먹었든 끊었든. 2형 양극성 장애는 항상 불면으로 시작되었다. 치료를 받지 않던 과거에는 잠을 자지 않으면 살인적인 전공의 생활을 견딜 수 없었기에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양극성 장애에 대한 치료를 꾸준히 받은 뒤에도 불면은 가끔 찾아왔고, 지금도 온다. 밤샘 당직을 밥 먹듯이 하는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수면 중추가 망가졌는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잠자리가 바뀌어도 잠들기 어렵다. 일종의 산업재해다.
즉, 2형 양극성 장애와 별개로 나는 불면을 겪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수면제가 필요할 거라는 걸 잘 안다.
처음에는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게,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게, 수면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수치스러웠고 숨기고 싶었다. 어느 상황에서건 잘 자게 해주는 약의 마력에 끌렸고, 약을 먹었을 때 느끼는 안도감이 달콤했지만 동시에 자꾸만 약을 찾는 나 자신을 나약하게 여겼으며, 누가 알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억지로 끊어버리고 몇날 며칠을 잠들지 못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책에도 적었지만 수면제에 대한 양가감정은 반작용을 형성했고 되려 수면제 오남용을 부추겼다. 나는 술을 마시고 수면제를 먹기도 했고,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가끔 불면을 겪고 수면제를 필요로 하며, 한편으로는 타고난 성향이 중독에 취약하기에 오남용을 주의해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말로는 쉬운데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형 양극성 장애로 치료받으면서 주치의는 1년 이상 꾸준히 수면제를 복용하도록 했다. 내가 끊고 싶다고 해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충분히 잘 자고, 잘 자지 못한 다음날 겪는 피로, 스트레스, 그에 대한 불안의 밤이 사라졌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경험이 충분히 쌓이자 불면과 수면제에 대한 예민도가 줄어들었다. 기분이 안정되면서 잘 자게 되긴 했지만, 불면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인정하고 그 문제만 곱씹지는 않았다. 사고가 나고, 제법 큰 흉이 지고,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다쳤던 부위가 욱씬거리고, 그래서 흉터가 눈에 띄면 속상할 순 있지만, 매 순간 흉터만 바라보고 사고의 순간을 되새김질하며 산다면 인생이 너무 불행할 것이다. 흉터는 이미 졌고, 어쩔 순 없다. 그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잊어버리며 넘어간다. 불면은 그저 증상일 뿐이고, 수면제도 결국 약일 뿐이다. 작금의 사태처럼, 아니면 세상 만사가 그러하듯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게 중독에서 벗어나는 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