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깨끗해?

Aux Anciens Canadiens 옛 캐나다인의 전통 요릿집

by 스노리

남편과 이렇게 오래 붙어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성격과 취향이 아주 다르고, 하기 싫은 건 잘 안 하는 타입이라 가끔 부딪치기도 하고 싸우면 며칠 모른 척 지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 같이 먹고 떠든다. 결혼 전에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남을 잘 챙기는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드니 자기주장도 세지고 참을성도 부족하다. 원래 그랬는데 참고 있다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나에게 결혼 전에도 지금도 못됐다고 한다.


“적어도 난 변하게 없네”


여행을 같이 다니고 숙소에서도 같은 공간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부딪치지 않는다. 자신의 공간은 줄었지만, 마음의 공간에는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조급해할 필요도 없고, 괴롭히는 누군가도 없고, 하지 말라는 것도 하라는 것도 없어서 신경을 긁는 자그마한 일들이 참을 만한 것쯤으로 바뀌었나 보다.


올드 퀘벡의 St. Louis 생 루이 거리를 따라 조금 올라오면 빨간 창문과 지붕이 눈에 띄는 역사적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나온다.

Aux Anciens Canadiens '옛 캐나다인 레스토랑'은 1600년대 지어진 퀘벡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주택 중 하나이다. 오랜 시간 주인을 바꿔가며 서 있다가 1966년 레스토랑으로 문을 열었다. 1800년대 이 주택에서 살았던 유명한 작가의 소설 제목에서 이름을 따와 문학과 오래된 건축물, 그리고 퀘벡 전통 요리가 결합된 공간으로 유명세를 날리게 되었다.

내부는 낮은 지붕과 두터운 회벽이 앤티크 한 냄새를 풍기는 포근한 가정집의 느낌이 났지만 세련된 사람들이 우아하게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점심은 와인과 수프, 메인,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요리이다. 남편은 가격을 더 추가하고 몬트리올에서부터 맛을 들인 양파 수프와 비프웰링턴을 주문한다.

역시 돈을 더 지불하니 음식도 배신하지 않는다. 기본 코스요리 중 랍스터 소스와 연어를 주문한 나의 요리보다 남편의 비프웰링턴이 더 맛있다. 내가 시킨 얇은 페이스트리에 쌓여 있는 쿨리비악 연어를 먹어 보더니 남편이 중국집에서 먹는 멘보샤 같다고 한다.

디저트도 블루베리 파이보다 남편이 주문한 메이플 파이가 더 맛있다. 아들 같았으면 바꿔 주었을 텐데 혼자 짭짭거리며 잘도 먹는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 갔다 온 남편에게 늘 그렇듯이 묻는다.


“화장실 깨끗해?”


“무슨 대답을 원해?”


“뭘 원하긴 깨끗한지 더러운지 알려 주길 원하지”


“이런 고급 레스토랑 화장실이 더러울 수가 있겠냐?”


“더러울 수도 있지. 오래된 건물인데 화장실은 안 고쳤을 수도 있지. 그걸 말하는 게 그렇게 귀찮은지 몰랐네”


“어떻게 매번 물어보냐?”


“매번 알려 주면 안 되냐? 다시는 안 물어볼게. 진작 말하지 그랬어”


감정이 상했다. 레스토랑을 나와 말도 없이 걸어간다. 남편이 담배를 한 대 피우겠다고 둘러보고 있으라고 하지만 대답 없이 혼자 걸어가 버린다.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 버릴까? 아니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까?

별의별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한참을 걸어왔다. 헤어진 곳을 되돌아보니 남편이 멀리서 여기저기 찾고 있는 듯 보인다. 좀 더 찾게 놔둔다.


느적느적 남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남편이 말한다.


“여기 서봐. 배경이 멋지게 나올 것 같아”


“그래”


웃지는 않지만 포즈는 취한다. 참기로 한다. 피할 공간도 없는데 어쩔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남편이 화장실을 갔다 올 때마다, 묻지도 않는데 화장실이 깨끗하다며 다녀오라고 한다.


여행을 다니면 낯선 이국적인 향기는 설레는 대상이 되지만, 낯선 화장실의 향기는 언제나 살짝 두려운 대상이 된다.

유럽 여행 시에는 동전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대부분 유럽의 화장실은 €1 정도 내야 하기 때문에 트레블 카드가 상용화되어 있는 나라에서도 동전은 필수이다. 공원이나 역 그리고 건물의 화장실에는 전철역 출입구처럼 코인 지급기가 있어 코인을 넣고 밀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결한 화장실을 쓸 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공짜이지만 공중화장실을 쓰고 싶지는 않다. 거리를 걷다가 자연스럽게 호텔에 들어가 로비에 있는 화장실을 쓴다. 투숙객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

중국의 화장실은 무료이지만 비공식적으로 돈을 받기도 한다. 화장실에 급하게 들어가다가 입구에 앉아 손을 내미는 아주머니를 만나면 당황스럽다. 지갑에서 소액의 돈을 건네주면 가끔 휴지를 주기도 하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더럽다. 관리인이 아닌 일반인인 것을 아는지 현지인들은 무시하고 그냥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살 때 밖에 나가면 아들은 물을 먹지 않았다. 공중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 안의 화장실도 그리 깨끗하지 않다. 아들뿐 아니라 남편과 나도 모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화장실로 뛰어간다.

돈을 내지 않고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돈을 내지 않아도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보지 못했다.


도쿄에 가면 공중화장실 투어를 해야 하나 싶게 독특한 화장실을 보여 주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코지 아저씨는 공중화장실 청소부이다. 초록의 공원에 예쁜 색으로 입혀진 조형물 같은 화장실, 통나무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볼일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연 친화적인 화장실, 그리고 투명한 셀로판지처럼 안을 훤히 비추다가 문을 잠그면 세상과 단절되는 화장실을 주인공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거울을 비춰가며 열심히 닦는다.

뺀질거리면서 매일 지각에 대충 일하며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모든 가치와 감정의 표현은 10점 만점에 몇 점이라는 어휘로 끝내 버리지만, 자폐인 친구에게 귀를 내주는 의외의 마음씨를 가진 동료와 팀을 이뤄 이른 아침부터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돌며 청소한다.

스포티파이가 가게 이름인 줄 알지만 멋진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주인공과 House of the rising sun, Pale blue eyes 그리고 Lou Reed의 Perfect day 같은 음악을 함께 들으며 새벽이 물러가는 도쿄의 일상과 거리를 보는 것에 만족했던,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과 진지한 유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던 영화이다.


며칠 후 남편 친구 부부와 퀘벡 근교의 오를레앙 섬에서 식사를 한 후, 남편 둘이 화장실을 갔다 오자 와이프가 자기 남편에게 묻는다.


“화장실 깨끗해?”


“건물이 오래돼서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깨끗해”


남편과 눈이 마주치고 시니컬한 웃음을 보여 주자 후다닥 화제를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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