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RIP, 오지 오스본

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by 레인송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지 오스본 'Blizzard of Ozz' 앨범 있을까요?'

'안녕하세요,ㅇㅇ님. 추가 블랙 바이닐 거래처 재고 확인 되면서 공유드립니다. 주문 시 17~18일 소요될 예정입니다. 저도 퇴근하면서 Goodbye to Romance 한번 들어가면서 하루 마무리 해야겠네요. 행복한 밤 보내세요'

'랜디 로즈의 기타 솔로와 함께 하는 퇴근길이라니 부럽습니다. 앨범 어서 만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역시 내공이 느껴지십니다. 배송 중간중간 체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몇 달 전 단골 온라인 LP샵 사장님과 나눈 1:1 네이버 톡의 내용이다. 작년 봄, 필 콜린즈와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의 LP를 구매하며 맺은 인연이다. 딱 봐도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말투다. 온라인에서의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대화지만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챘다. 같은 음악을 듣고 살아왔음이 틀림없다. 약속대로 2주 후 오지의 앨범이 나에게 왔다. 멜론에 저장해 듣고는 있었지만 30년 전 잃어버린 LP를 다시 내 품으로 불러들였다. 한 계절 내내 민화를 그리며 이 앨범을 닳도록 들었다. 속도가 느린 작업인데 헤비메탈 음악이 내 손에 모터를 부여한 듯 속도가 붙었다. 2025년 7월 22일, 오지가 죽었다. 좋아했던 뮤지션이나 배우, 스포츠 선수들이 죽을 때마다 오랜 벗을 잃은 것처럼 속이 저린다.




오지 오스본을 처음 만난 때는 중학교 3학년쯤이다. 고즈넉한 겨울밤, 라디오 프로 '황 인용의 영팝스'에서 소개한 'Goodbye to Romance'를 듣자마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오지 오스본의 앨범 커버를 오며 가며 봤던 터라 도저히 그의 노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곡이었다. 13일의 금요일에 맞춰 데뷔 앨범을 냈을 정도로 후덜덜하고 오싹한 메탈을 창시하고자 했던 '블랙 사바스'의 보컬을 시작으로, 얼마 안 가 솔로로 전향한 그는 랜디 로즈라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와 의기투합해 명반으로 손꼽히는 앨범'Blizzard of Ozz'와 'Diary of a Madman'을 내놓았다. 흔히 그를 '어둠의 왕자'라고 부른다. Goodbye to Romance가 수록된 'Blizzard of Ozz'의 커버는 그야말로 어둠의 마스터 다운 퍼포먼스로 14세 소녀의 비위를 사납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앨범을 소장하게 된 데에는 그의 음악이 거스를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지 오스본을 특별히 더 아끼게 된 이유는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천재들이 그랬듯 랜디 로즈 역시 안타깝게 요절하고 말았다. 3년이라는 짧은 활동과 비행기 사고라는 비극적인 죽음이 그에 대한 마음을 더욱 애틋하게 만들었다. 이미 대단한 기타리스트였음에도 투어 중에도 지역 전화번호를 뒤져 선생님을 찾아 클래식 기타 레슨을 받았다는 대목에서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더구나 헤비메탈의 산물인 약과 알코올을 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랜디 로즈를 달리 보이게 했다. Goodbye to Romance에서 랜디의 기타 솔로는 노래와 같다. 기타 리프가 어쩌면 그토록 아름 다울수 있는지.





'Goodbye to Romance'는 마지막 고등학생 시절의 배경 음악이나 다름없는 곡이다. 남들은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는 동안 나는 모든 것과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이 곧 현실화된다는 불안과 착잡함에 파묻혀 있었다. 졸업 후, 사랑하는 친구 J를 매일 볼 수 없을뿐더러, 봄이면 아무도 없는 등꽃 덩굴 아래 벤치에 앉기 위해 새벽에 등교했을 만큼 고대하던 보랏빛 발화의 순간과도 끝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하는 것 없이도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호사도 끝날 것이다. 졸업 이후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의 미래를 보살펴야 한다는 현실이 무엇보다 겁이 났다. 다른 고3들은 잠 못 자고 공부하느라, 하는 만큼 성적이 오르지 못해 예민해졌다지만 나는 공부. 입시와 무관하게 날이 서있었다. 어쩔도리없이 어른으로 진입하는 게 싫었다.


오지 오스본의 1987년 앨범 'Ozzy & Randy Tribute' 앨범을 들으면 숨통이 트였다. 메탈이나 록, 프로그래시브 상관없이 밴드의 음악은 스튜디오 버전보다 라이브로 듣는 게 정말이지 두 배, 세배는 좋다.

학력고사 전 날까지도 이 앨범을 들었을 정도로 이 명반은 나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다. 누구는 밤 열 시 라디오 프로의 Dj나 교회 성경 모임 오빠에게 위로받는 다지만 나는 오지의 보컬과 랜디의 신들린 기타 리프, 현란한 드럼과 관중들의 환호성으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학력고사일 며칠 전, 늘 그랬던 것처럼 점심시간에 운동장 몇 바퀴 산책을 하고 교실에 돌아오니 포장지에 곱게 쌓인 선물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풀어보니 나무로 만든 십자가였다. 'Blizzard of Ozz' 앨범 커버에서 오지가 들고 있는 크기와 흡사한 나무 십자가였다. 어딜 가나 꼴통을 흠모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교내 친구들 중에도 나를 좋아해 시시 때때로 선물과 편지를 보내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섬찟했지만 센스 있는 선물에 웃고 말았다. 누가 주었는지 모르겠고 고마운 마음은 전하고 싶어 수업이 끝난 후 교실부터 집까지 십자가를 높이 치켜들고 걸었다. 십자가 덕분에 학력고사를 운 좋게 봤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주님은 공평하신 분이라 그런 행운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렇게 사랑하는 대상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인가 보다. 젊은 날의 작은 한 조각일지라도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바람처럼 떠나는 장면을 보는 일은 참 슬프다.



RIP, Ozzy 1948.12.03 - 2025.07.22




Goodbye to Romance

Paranoid

I Don't Know

Dee (Randy Rhoads Studio Out-Tak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