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를 모르는데, 눈물이 흘렀다. 그런 건 정말 신기한데, 음악은 정말 시나브로 마음을 움직이는 데가 있다. 글을 통한 감동은 선명한 이유와 회상지점을 만들어 깊게 베이고, 그림을 통한 눈물은 마음이 어딘가 새로운 세계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라면 음악은 안으로 잠겨 들게 만든다. 천천히 차올라 바깥으로 부드럽게, 밀려갔다 돌아 오는 파문을 남긴다.
내가 알고 있던 노래는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 )인데 알고리즘을 타고 빠담빠담을 지난 뒤 Non je ne regrette rien 으로 이어졌다. 고개를 까딱이며, 공부한 것을 정리하며 듣다가 툭. 눈물이 공책 위로 떨어져 내렸다. 첫 음절과 같은 클라이막스 파트가 되돌아 왔을 때 쯤으로 기억한다. "Non, rien de rien /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 아무것도 / 아니,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프랑스어를 모르니 가사를 알아들었을리 없고, 이때는 아직 에디트 피아프의 자전적 영화 라비앙 로즈를 보기 전이었다. 자세한 사연도 아는 바가 없이. 그저 노래의 힘으로, 소리로 전달되는 정서 만으로 떨어져 나온 마음.
쉽지 않은 삶이었다. 불안정한 세계 정세와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일어난 시기임을 감안하더라도, 피아프의 삶은 객관적으로 굴곡이 컸다. 아니 객관적으로 보기 애달플 만큼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 불우한 성장 환경, 겹치는 불행.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연인의 죽음과 수 번의 교통사고. 망가진 몸. 당시의 온전치 못한 의학 지식은 그녀를 중독으로 이끌었다. 재활을 반복하느라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가수가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말한다.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1959년 12월 13일 결국 무대에서 쓰러진다.
이 노래는 겨우 목소리를 낼 만큼 회복한 그녀가 생명을 짜내듯 불러 세상에 공개한 노래다. 평생의 노력과 삶의 굴곡이 담겨 있는 듯한 목소리 만으로 한 번.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또 한 번. 그녀가 긍정한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고 나서 또, 그치기 어려운 눈물을 쏟았다. 처음의 눈물이 잔잔하게 내면의 본능적인 부분이 자극되어 나온 감정이라면, 가사는 깊게 사로잡혔던 분노를 내려놓게 만드는 감동이었다.
돌아가는 인생.
추구하던 것은 평범 이상의 노력을 쏟고도 헛돌기만 했다. 평균을 한참 웃도는 학점으로 취직하나 못하고 허둥댔다. 그건 사실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방황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거칠어져서였던 것도 같다. 몇 번, 기술 면접이 아닌 인성 면접에서 떨어지면서도, 자각하지 못했다.
남들 같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느라, 잘 쌓아 놓은 과거마저 짐처럼 혹은 저주처럼 느껴졌다. 나는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과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순간들 모두를 후회하며, 삶의 의미를 잃고 있었다. 죽음을 생각 해볼 만큼. 진지하게 출가 면접을 보고 왔을 만큼.(그 마저도 떨어진 걸로 봐선 아닐 수도 있겠다.).
한참 울고 나서, 번역된 가사를 보는데 잠시 기분이 이상했다. 후회가 가득할 뿐인데 왜 후회하지 않는 다는 가사의 노래에 울었을까. 앉아서 곰곰 생각하는 동안, 마음은 스스로에 못 박아대는 지금을 떠나 과거로 조금 더 과거로 흘러갔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서, 무모했지만 진심을 다했던 때로.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원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습득했다. 물리와 수학의 이중전공을 신청해놓고 교양으론 법학이나 정치학, 철학 수업을 들었다. 즐거웠고, 재미 있었고, 행복했다. 대학원 진학이나, 학자로 살아남는 것에 도움이 안될 일들인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했다.
평가와 기준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시간을 지나느라 지금, 스스로를 잔뜩 비난하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 과거의 나는, 순진한 나는 한사코 반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현재의 기준으로 자신들을 모두 부정하지 말라고. 쓸모 없는 것이라 스스로의 일면을 부정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의식에 도달하지 못한 과거의 기억들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빌어 눈물로 호소 하는 것은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왈칵 터져 나왔다. 하염없이.
그런다고 무엇이 바뀌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방황했고.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알지 못하는 상태 자체를 긍정하지도 못했다. 그땐. 지금이라면, 조금 더 편안하게 걸었을까. 알 수 없다. 상황이 사람을 바꾼 면도 있을 테니까.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도 같다.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그린 영화, <La vie en rose>를 본 것은 몇 년 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를 보며 많이 운것과, Non je ne regretten rien을 부르던 순간 느꼈던 절절함을 기억한다. 함부로 삶을, 쉽게 낙담하지 말아야 겠다고. 꿋꿋한 마음을 그럼에도 걸어가겠단 마음에 덧대어 붙였다. 남의 비극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청록색으로 느껴졌지만, 달관 한 듯 미소 짓는 그 당당한 목소리는 그것까지 품어줄 것만 같아서...... 그녀는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장미의 인생은 장미 빛 인생. 자신의 삶을 수긍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면. 언제든 마음은 다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전해 주고 싶었나 보다. 인생의 서사를 담은, 굴곡마저 예술로 승화 시킨 목소리로. 애절함과 당참이 아름답게 퍼져 나오는 목소리 만으로. 그렇게 시간을 건넌 거겠지.
그녀는 노래의 씨앗을 레코드에 심어 놓았나 보다.
그 아픔을 다 딛고 다시. 50년 뒤에 또 다시 힘든 길을 걷는 이가 있어 여기에 목놓아 올게 하려고. 그 울어버리고 난 마음으로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해주려는 마음을 담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마음.
그 단단한 마음이 지금의 나의 가슴 한 켠을 여전히 밀어 올려준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위로 할 수 없으니, 나는 또 미래의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써야겠다. 받은 것처럼.
어떤 삶을 살았어도
장미의 인생은
la vie en rose
(장미빛 인생)
그대도 스스로가 꽃임을 느끼는 나날이 되길, 여기에서 간절히 기도하겠다.
나도, 내가 아끼는 꽃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그대를 포함한 꽃들의 눈물과 미소가 피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