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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총 Oct 04. 2024

피노키오 2화

윤 총무의 기묘한 이야기


기시감


설마 꿈인가? 백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움직여 인형에게 다가갔다. 아니, 꿈이 아니다. 매일 밤 악몽에서 보던 인형과 미묘하게 달랐다. 


"분명히 그 인형인데…."


낡은 의자 위에 놓인 그 물건은 꿈속에서 아내의 품에 안겨 있던 것과 명백히 닮아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판박이었다. 그런데 왜 다른 느낌일까. 고민하던 백철은 순간 깨달았다. 눈앞의 이 흉물과는 다르게 꿈속의 인형은 실제 살아있는 아기와 같은 생기를 띄고 있었다는 것을. 백철은 의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아내를 불렀다. 


"여보… 여보!"


그의 외침에 승아가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응? 왜 불러, 백철 씨?"

"혹시 이거 어디서 본 적 없…"


하지만 다가오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불길한 생각 하나가 백철의 뇌리를 스쳤다. 그동안 자신의 악몽을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았던 이유. 그 불쾌한 예감. 


"아,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뭐야. 거기 뭐 있어?"


백철은 황급히 거실로 들어오며 베란다 문을 쾅 닫았다. 


"아니! 아무것도 없어! 배고프지? 저녁은 나가서 먹을까?"


승아가 수상한 표정으로 그의 안색을 살폈지만 백철은 모른 척 유쾌함을 가장하며 방으로 향했다. 이 모든 건 그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어야 했다. 꿈에서 느끼던 기분 나쁜 현실감이,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리는 일 따위 없도록. 


분리수거장으로 내려온 백철은 공용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손에 든 목각인형을 거칠게 던져 넣었다. 뚜껑을 닫기 전, 잠시 인형을 바라보며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보지 말자… 내가 키울 건 네가 아니라 곧 태어날 아이니까."


이제는 보지 말자니, 오늘 처음 발견한 인형 아닌가. 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신경쇠약이라도 온 걸까. 세차게 뚜껑을 닫고 뒤돌아서는데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아내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어, 여보."

"백철 씨. 병원에서 전화 왔어. 딸이라는데?"

"정말?"


백철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꿈속에서 아내가 그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품에 안은 인형을 내려다보는 그녀에게 백철은 묻는다. 


"아기라니? 그게 뭔데?" 


그리고 그런 백철에게 아내는 매번 반문한다.


"뭐냐니? 우리 딸이잖아." 


순간 백철의 등골이 송연해졌다. 엄습하는 불안감에 쓰레기통 뚜껑을 황급히 들어올렸다. 분명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인형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졌지? 손을 넣어 쓰레기를 뒤져봤지만 흉물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귀신이 들렸나…."


백철은 홀린 듯 중얼거리며 멍하니 집으로 향했다. 


"오밤 중에 쓰레기 버리러 간다더니, 뭐 하다가 이렇게 오래 걸렸어?"


찝찝한 표정으로 현관을 들어서는 백철에게 아내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물었다. 


"잠깐 뭐 좀 찾느라." 

"그나저나 여보, 이것 좀 봐." 


승아는 남편에게 무언가를 내밀어 보였다. 백철의 사지가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틀림없이 분리수거장에 버렸던 바로 그 목각인형이었다. 


"베란다에 이런 게 있더라? 전에 살던 사람들이 놓고 갔나 봐. 생긴 것도 꼭 여자애처럼 생겼어. 이거 봐, 완전 귀엽지 않아?"


백철은 현관에 얼어붙은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순진하게 말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그가 물었다.


"그게 베란다에 있었다고?"

"응! 왜 여태 못 봤나 몰라. 근데 당신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니… 아니야." 


백철은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이성을 되찾으려 애썼다. 뭔가 착각한 게 분명했다. 악몽 때문에 몇 달째 잠을 설쳤으니 제정신인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래? 이 인형 싫어? 찝찝하면 그냥 버릴까?"


아내의 손에 들린 인형은 마치 백철을 마주 보며 웃는 듯했다. 마음 같아선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웠다. 이 모든 게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 물건을 버리고 또 버려도 끊임없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정말 확인하기라도 한다면 도저히 제정신으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버리지 말고 원래 있던 자리에 두자. 그리고… 가자."

"응? 어딜?"

"이사 가자며. 다른 집 알아보자고. 당신 말대로 이 집 뭔가 이상한 것 같아." 


백철은 아내의 손에서 인형을 낚아챈 뒤 베란다로 나가 의자 위에 거칠게 올려놨다. 뒤돌아서는 순간, 그는 기분 나쁜 무언가를 본 듯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저녁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목각인형의 정수리 부분, 선선한 바람에 흩날리는 희미한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그는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그날도 악몽으로 잠을 설칠 것에 대비해 백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형이 현실로 나타난 이후, 그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았다. 


재목 材木


한 달이 흘렀다. 백철과 승아는 초음파 검사실에서 손을 맞잡고 감격에 겨운 대화를 속닥이고 있었다. 모니터를 통해 이제는 이목구비가 가늠되는 태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기 발가락 보이시죠? 다섯 개씩 다 있네요." 


의사의 말에 승아는 모니터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오는 아내는 언제 엄마 되길 거부했었냐는 듯, 뱃속의 딸 세라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때 모니터를 유심히 보던 의사가 뭔가를 발견하고 말했다. 


"아기 코가 참 높네요. 예쁘려나 봐"

"어머, 정말요? 아빠를 닮았나."

"높기는 한데… 조금 특이하게 생겼네." 


의아한 투로 말하는 의사의 말에 백철은 모니터 속 태아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


"저거… 코가 맞는 거죠?"


딸의 얼굴 한 중간에 각지고 얇은 모양의 길쭉한 코가 선명하게 보였다. 물론 맞다는 대답을 바라고 물었지만 그는 분명히 식별할 수 있었다. 세라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했던 아기들의 초음파 사진과 달랐다. 그 윤곽은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듯한 이질감을 풍기고 있었으며, 얼굴 가운데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꼭 나뭇가지처럼 생긴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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