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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총 Oct 08. 2024

피노키오 4화

윤 총무의 기묘한 이야기


분만


백철은 미친 듯이 베란다 난간을 넘어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여보! 왜 그래?"


거실엔 피를 철철 흘리는 아내가 바닥에 누워 창백한 얼굴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 속에 신음하며 남편을 바라봤다.


"자기야, 나 좀 살려줘… 으악!"


백철은 연신 소리를 질러대는 아내를 서둘러 부축해 집을 나섰다. 


"병원으로 가자. 조금만 참아, 승아야!"


승아를 태운 운반 침대가 응급실 복도를 다급하게 미끄러져 움직였다. 의사는 분만실로 향하며 고통에 울부짖는 아내를 다독이며 안심시켰다. 


"승아 씨, 아무 걱정 말아요. 제 손 잡고 천천히 숨 쉬어 보세요."

"너무 아파요… 으악!"

"산모 분, 긴장 푸시고요. 아기 소리 좀 들어볼게요."


간호사가 승아의 배에 청진기를 가져다 댔다. 그러더니 다급한 표정으로 의사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들려요."

"서둘러야겠어."


두려움에 휩싸인 백철이 간절하게 외쳤다. 


"저기요, 선생님! 승아랑 아기, 둘 다 괜찮은 거죠?"


하지만 의사는 대답이 없었다. 분만실 앞에 도착하자 문이 열리고 아내와 의료진은 순식간에 안으로 사라졌다. 내가 부정 탈만한 짓을 한 걸까? 인형을 태운 게 잘못이었나? 아니. 아니야. 당연히 우연일 것이다. 드럼통 속에서 불타오르던 목각인형의 형상이 눈앞을 어른거렸다. 그럴 리 없다. 그냥 인형일 뿐이다. 백철은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며 분만실 앞을 서성였다. 


시간은 어느새 9시를 넘겼고 4시간째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두운 복도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백철은 의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하나님, 제발. 제발 승아만이라도 무사하게 해 주세요."


그때 마침내 분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백철이 반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됐어요? 끝났나요? 아내는 무사하죠?"


간호사는 그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출산은 하셨습니다만 그게…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왜요? 무슨 일입니까? 아기는 괜찮아요?"

"일단 들어오시죠."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수술실 내부는 막 출산을 마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역시나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보!"


백철은 산소 호흡기를 차고 누워있는 아내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손을 움켜쥐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수고했어, 여보.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지만 아내는 탈진한 듯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백철이 의사에게 물었다. 


"아이는? 선생님, 우리 세라는요?" 

"남편 분, 일단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네?"


영문을 모르겠는 백철에게 간호사가 다가왔다. 파란색 담요에 싸인 무언가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백철의 심장을 옥죄어왔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아내 분이 출산하신 겁니다."


간호사가 내민 담요 위에는 까맣게 그을린 목각인형 하나가 피로 범벅된 채 놓여있었다. 백철의 얼굴이 분노로 하얗게 질렸다. 


"이게 무슨… 장난 집어치쇼." 

"저희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애 어딨어!" 


백철이 고함쳤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하나 같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백철 씨."


가냘픈 목소리에 백철은 다시 승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내의 얼굴을 감싸 쥐며 속삭였다. 


"정신 들어? 힘들었지?"

"세라… 우리 세라는?"


승아는 뭐라 대답할지 몰라 입을 닫고 있는 남편을 절박하게 다그쳤다.


"우리 세라, 잘못된 거 아니지?" 


나에게, 우리에게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닥친 것일까. 백철은 목구멍을 기어오르는 구토를 억누르며 말없이 아내를 끌어안았다. 


호접몽


운전 중인 차 안에서 부부는 말이 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승아는 무기력했고 무표정했다.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기에 아기는 죽은 것으로 믿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내는 오히려 덤덤한 모습이었다. 


"좀 괜찮아?"

"뭐가?"

"응? 뭐가 라니. 아무래도 당신이 나보다 상심이 클 테니까."


승아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살아있어."

"뭐?"

"세라, 살아있다고." 


아이를 잃은 충격 때문일까.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몰랐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아내를 부축해 현관문으로 다가가며 백철은 다정하게 말했다. 


"나 휴가 냈어. 당신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한동안 같이 있으면서…"


하지만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에 백철은 말을 멈추고 얼어붙었다. 문틀 너머 베란다 쪽에서 들려오는 것은 틀림없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였다. 


"뭐야…?" 


공포에 질린 백철을 뒤로하고 아내는 홀린 듯이 베란다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백철도 정신을 차리고 뒤따랐다. 베란다 구석에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낡은 의자가 다시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 위에선, 웬 갓난아이 하나가 응애응애 울고 있었다. 꿈속에서 아내 품에 안겨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마치 악몽 속 인형이 처음 현실에 나타났던 그때처럼. 


"백철 씨, 내가 말했지? 우리 딸 여기 있잖아." 


승아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어갔다. 그 광경은 너무나 익숙해 끔찍하기보단 차라리 그립기까지 했다. 그 순간에라도 백철은 깨달았어야 했다. 진짜 악몽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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