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코뿔소가 인상 깊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아이는 꼬마 철학자, 루트비히.
둘은 친구 사이가 틀림없다.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마음이 잘 통하는. 그런 모습을 침대 위에서 지켜보는 삐삐, 코끼리 맘보, 피노키오, 개구리. 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듯한 표정의 인형들. 그림책 구석구석 숨어있는 숨은 그림 찾기 놀이처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린 시절에 내 상상 속에도 꼬마 친구가 있었다. 언제나 주머니 속에 쏘옥 들어가는 인형만큼 작은 아이는 늘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마음속으로 건네는 이야기도 그 친구는 잘도 들어주었다. 어른들은 그런 상상의 세계를 믿지 못한다. 보지 못하기에
"코뿔소랑 루트비히랑 친구인가 봐요."
"동물원에서 데리고 온 거 아니에요?"
"아빠는 왜 루트비히를 못 봐요?"
"아빠가 바보 같아요. 왜 못 보는 거예요?"
아이들은 마치 책 속의 아빠가 우리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듯 소리를 친다.
"아저씨, 저기 있잖아요. 책 상 밑에요. 아저씨, 바로 뒤에 있잖아요. 저기 뒤를 봐요!"
답답한 듯 아이들은 아빠가 찾지 못하는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웃기는지 못 찾는 모습을 깔깔거리며 웃으며 쉼 없이 이야기를 꺼낸다.
"코뿔소가 엄청 빠르고 숨바꼭질을 잘하나 봐요."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vs 보이는 것은 모두 진실일까?
가끔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기도 하다. 무언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도 있고. 이를 테면 우리가 마시는 공기, 분위기, 신의 존재, 사랑, 마음. 분명히 있지만 있다고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말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상황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루트비히는 코뿔소가 있다고 말하고 루트비히의 아빠는 내내 문 뒤, 책상 아래, 옷장 등을 살피며 코뿔소를 찾으려고 애쓴다. 루트비히의 이야기 속으로 아빠는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빠는 코뿔소가 없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이때, 루트비히는 아빠에게 질문을 던진다.
"증명할 수 있나요?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연이은 어린 철학자의 질문.
"아빠, 달은 보여요?"
"여기서는 안 보이지. 다른 쪽에 있으니까."
루트비히의 질문 공세는 계속된다.
"아빠, 달이 지금 저쪽에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나요?"
"증명할 수 없지만 알고는 있어. 코뿔소가 여기 없다는 것도 알고."
저기 있잖아요, 저기! 하며 아이들은 책을 읽어주는 내내 외친다.
코뿔소 이야기는 실제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스승인 버트런드 러셀과 코뿔소 논쟁을 벌였던 일화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의 스승은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방에서 찾지 못했더라도 코뿔소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으니까.
유튜브 5분 뚝딱철학에서 캡쳐
아빠와 루트비히가 나누는 티카타카 주고받는 이야기가 신선하고 알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해 주었다. 가끔 아이가 내게 질문해 올 때 아이의 질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할 수 없을 때 겪는 당황스러움도 떠올랐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설명해야 하거나, 증명해야 할 때. 깊은 사고의 틀없이 누가 이야기한 대로 믿거나 받아들였던 사실들이 많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사실, 복잡한 철학 이야기에 초점을 두기보다,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의 자세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가고 마침내 내 아이가 생각하고 질문하는 태도가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하는 아빠의 태도.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아빠와 아들의 다정한 대화. 아들의 상상 속 이야기를 따라가며 아이의 질문에 다정히 대답하는 아빠. 그렇게 겹쳐진 작은 지점에서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까.
만약, 아빠가 루트비히의 이야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책이나 읽어. 또는 무슨 소리야?" 하고는 대화를 끝내버렸다면 그건 최악의 대화였을 것이다. 루트비히의 철학적인 태도도 들여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루트비히는 아빠에게서 정확한 답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수께끼 같은 물음과 답을 하는 동안 둘은 하나의 언어 놀이를 한 셈이다.
"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신의 존재, 마음의 존재, 사랑의 존재를. 언어는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중요하다.
명확히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다만 이 책을 통해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바라보거나 살펴볼 때 설명해 나가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유당 블로그에 들어가면 아이들과 활동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니, 아이들과 책을 읽게 되면 활동해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도 코뿔소!
아이들은 코뿔소 코를 하루 종일 쓰고 다녔다. 점심시간에도 급식실까지 침범한 꼬마 코뿔소들은 밥을 먹어치우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마스크에 달린 코뿔소를 쓰고 기어 다니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놀았다.
<질문하기 + 씽킹보드 브레인스토밍>
얘들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세상에 있는 것,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씽킹보드에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어보도록 했더니,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칠판에 붙인 것 중에서 1-2가지를 골라서 왜 없는지 이유를 설명해 보도록 했더니 나름 설명을 해주는 아이들. 1학년 친구들에게 이유까지 적으라고 하면 너무 큰일이 될 것 같아서 일단 말로 설명하게 했더니 신나게 설명을 한다.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 미세먼지, 귀신, 꿈, 바람, 사랑, 용, 생각, 구름, 말, 토성, 산소, 상상, 전기, 공기, 지구, 마음, 우주, 사랑, 소리, 신, 규칙, 물, 상어, 코로나, 자외선, 미세플라스틱, 열기, 꽃가루, 괴물, 유령, 개미똥, 생쥐똥, 캥거루 등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설명해 준다.
1. 바람 :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겨울에 바람이 불면 춥고, 바람이 지나가면 나뭇가지에 나뭇잎이 막 흔들려요.
2. 캥거루 : 아기 캥거루가 주머니에 들어가면 안 보이잖아요.
3. 열기 : 보이지 않지만 뜨거운 거 옆에 있으면 땀나고 더워요. 캠핑 가서 불 가까이 있으면 엄청 뜨겁고 찬 바람이 들어오면 열기가 없어져요.
4. 귀신 : 집에서 아무도 문을 닫은 사람이 없는데 스윽 닫혔어요. 그거 우리 누나가 귀신이래요.
5. 코로나 : 코로나는 안 보이는데 사람들이 걸리면 기침도 나고 열도 나고 엄청 아프게 하니까 있는 거잖아요.
6. 전기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사용하잖아요. 이렇게 교실도 환하게 해주고요.
7. 개미똥 :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아도 개미도 먹으면 똥을 싸잖아요.
8. 말 : 우리가 말을 하면 친구가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말은 있는 거예요.
9. 사랑 : 엄마가 나를 사랑해 주시는데, 보이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행복해져요.
고학년 아이들처럼 논리적인 설명은 어렵지만 1학년 친구들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꼬마 철학자가 되어 나름의 설명을 하며 증명해 내었다.
<낱말 카드 만들어 보물찾기 하기>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적게 합니다. 점심시간, 교실 구석구석에 숨겨 두고 보이지 않는 낱말을 찾아보는 보물찾기 활동을 해본다.
어둠 속에서 UV 랜턴으로 책을 비춰보면 장면마다 형광빛이 드러나는 신비함도 덤으로 느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인쇄하는 데에는 3가지의 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UV랜턴으로 비춰본 책의 일부분.
.
루트비히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곁에 두며 자신의 생각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끄덕거리며 잘 들어주면 된다. 때론 질문을 던지고, 아이가 불현듯 던지는 질문에 함께 고민하고 가까이 다가가며.
글을 덮으며 쇼펜하우어의 글귀가 떠올랐다.
"내가 깨달은 것만큼 이 나의 세계다"
삶을 살아가면서 결국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나의 사고의 틀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나의 생각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짓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세계가 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젊은 시절에 맞다고 주장한 자신의 생각을 나중에 뒤집어서 그때의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했던 것처럼, 언제나 나의 생각은 틀을 깨부수고 점점 확장되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만큼 나의 세계는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꼬마 철학자 루트비히는 열린 창문으로 바라보는 세계처럼 활짝 열려 확장되어 갈 것이다. 집집마다 살고 있을 꼬마 루트비히들의 성장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