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안의 어둠은 비밀을 공유하기 좋은 서랍
날카로운 이빨을 숨긴 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과일주를 따라주네
창밖 근심스런 얼굴로 서 있던 달빛은
바람에 녹아 사리성당을* 넘지 못한다
섬 안의 저녁은 잘 못 읽거나 틀리게 읽기 좋은 책
온몸을 웅크려 정확하게 읽으려 했지만
이상한 과일에서 없는 발이 걸어온다
난간을 넘어오는 분별없는 뱀
섬 안의 밤은 행간을 버리기 쉬운 밤
띄어쓰기도 없이 날것들이 물어뜯던 검붉은 입술
꽃을 베어 무느라 바지춤이 흘러내린 문장을
애초부터 허리띠도 없는 문장을 오독했다
그 밤, 그들은 섬 하나를 찢어놓았어
뱀이 자주 다니는 풀밭에서 샤프란꽃이 진다
섬 한가운데로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고
사람을 폭력으로 읽는 밤은 슬픈 일이야
아름다운 섬 중앙의 샤프란꽃은 꺾지 말라던
할머니의 말이 새벽 귀를 타고 담을 넘는다
* 사리성당: 신안군 흑산도 사리마을 내 유배문화공원 옆에 있는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