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나를 계산하지 않았다
이 일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
그게 가장 솔직한 말이다.
당장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했고
무엇보다 부업이어야만 했다.
회사를 다니며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
그게 전제였다.
처음에는 익숙한 걸 떠올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동안 해오던 일처럼
번역을 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PPT 장표를 만드는 일.
크몽, 숨고,
이런 플랫폼에 계정을 만들고
서비스 설명을 쓰고
샘플도 몇 개 올려봤다.
결과는 뻔했다.
딱 봐도
내가 의뢰인이라도
나보다 더 많은 커리어를 쌓아둔 사람에게
눈길이 가겠구나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맴돌다
유튜브 알고리즘 어딘가에서
배달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로 20년 넘게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다.
주차하다가 살짝 긁은 적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그냥 생활의 흔적이라 생각했다.
운전도 좋아했다.
그래서 차를 쓰는 일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배달 미션도 꽤 괜찮게 터지고 있었고
기분 좋은 흐름이었다.
신당역 근처에서 치킨 단체 주문을 픽업하고,
동대문시장 인근의 빌라촌으로 향했다.
좁고 굽은 골목길.
비를 뚫고,
성공적으로 배달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향하던 길이었다.
요 코너만 돌면 된다 싶었던 그 순간,
“그윽—”
묵직한 소리가 났다.
운전석 쪽 옆면이
건물 벽을 긁은 것이었다.
너무 어둡고 좁은 길이었고
처음엔 심각한 줄 몰랐다.
다음 음식점 조리 대기 중 차를 살펴보다가
옆면이 꽤 찌그러진 걸 확인했다.
내 운전 인생에서 가장 큰 사고였다.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며칠 치 수당이 날아가는 걸까.’
‘보험 처리를 해야 하나.’
여러 생각이 쏟아졌다.
결국은 돈 걱정이었다.
주유비 정도는 투자비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수리비는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자동차보다 더 큰 비용에 대해 생각이 닿았다.
내 몸.
내 노동.
누적된 피로.
그리고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
지금은 그저 허리가 조금 아프고
잠이 부족하고 몸이 무거운 정도지만
어쩌면 나는
조금씩 내 몸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동차야 수리하면 되지만
몸은,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그건 그렇고,
정말 벌고 있긴 한걸까.
생각이 많아진다.
계속해도 되는 일일까.
계속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일까.
물론, 당장 그만둘 계획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만둘 수 없다.
지금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건, 한 건이 생활과 직결된다.
아침엔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엔 다시 배달을 돈다.
이 패턴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심지어 조금은 안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항상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현재에 충실하면서
나중의 나를 위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하루하루가 단순한 수입이 아니라,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계속 살펴봐야 한다.
오늘도 더 조심스럽게.
잃지 않기 위해.
가족과, 지금의 나를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