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쌓여 내일이 된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낮부터 배달을 나섰다.
전날 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더니,
이날은 흐린 하늘에 가끔 흩뿌리는 정도로 그쳤다.
날이 좋고 시원해져서인지,
사람들이 즐기러 바깥으로 많이 나와서인지,
주말이지만 배달료는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앱을 켜고 첫 몇 건을 받아보면
그날의 단가와 흐름이 대략 보인다.
이날은 아쉬운 쪽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른 시간부터 나왔으니
다짐한 만큼은 채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세 시간을 더 달렸지만
단가는 더 내려가는 듯 보였다.
오후 5시쯤, 앱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5시 30분부터 저녁 미션이 시작된다는 소식.
콜 간격이 뜸해지던 순간,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침에 아이와 물만두 몇 개를 먹고
점심은 건너뛴 탓에, 허기가 몰려왔다.
마침 약수역 근처였다.
나만의 작은 휴게소, 버거킹 약수점으로 향했다.
주차장이 있다는 점에서 이미 90점 이상,
넓고 깔끔한 매장이 덤인 곳.
나는 앱 상태를 잠시 ‘운행종료’로 바꾸고
숨을 고르듯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할인중 메뉴를 고르고
콰트로치즈와퍼주니어와 통새우와퍼주니어를 받아
2층 창가에 앉았다.
치즈버거는 기대만큼 맛있었고,
통새우는 매콤하면서도 타코 같은 식감이 좋았다.
전날 밤 이태원에서 본 버거집의 조리 장면이 떠올라
괜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5시 30분에 맞춰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앱 상태를 다시 ‘운행시작’으로 바꾸었다.
첫 콜은 공교롭게도 버거킹 약수점.
1층 픽업대에 다시 서자 직원이 물었다.
“주문번호가 몇 번이세요?”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아, 쿠팡입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손님으로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배달 파트너로 서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묘하게 웃겼다.
짧은 순간에 완전히 바뀐 역할,
그야말로 스위치였다.
예전에 아내와 이런 얘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난 회사에서 퇴근하면
회사 일은 아예 잊어버려.
마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것 같아.”
그땐 단순히 on/off의 개념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원에서 아빠로,
아빠에서 배달기사로,
배달이 끝나면 다시 남편이자 사업 파트너로,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는 하나의 스위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스위치를 켜고 오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이어졌다.
인생이란 것도 결국
한 번의 큰 결정보다는
수없이 켜고 끄는 순간들의 누적 아닐까.
그 스위치들이 쌓이고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나는 천천히 차 시동을 켰다.
끄고, 켜고, 또 켜며 살아가는 이 시간들.
어쩌면 그것들이야말로
흩어지는 하루를 잇는 연결선일지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때로 흔들리더라도,
나는 멈추지 않고 빛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쌓여간 오늘들이
내일의 나를 한결 단단히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