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 걸음 두 걸음 걷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느려도 결국엔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몇 번이나 제자리를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구는 둥글고, 그게 내 세상이란 걸.
좌절은 드라마처럼 우아하지 않았다. 기, 승, 전, 결 그런 건 애초에 뒤죽박죽 섞여 어디가 시작인지, 무엇이 복선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멍하고, 무기력한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눈물이 쏟아지는 날도 있었고, 폭발하듯이 화가 치밀어올라 주체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자극은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모였다.
"죽어야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다.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고, 창 밖의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잠에 들 때나, 일어날 때, 밥을 먹을 때, 누구와 대화할 때도 어디에서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존재했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너는 참 잔인하게 나를 또 걷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 그렇게 아주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 때쯤 너는 저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