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수 없는 사람
벽을 마주했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
사뿐사뿐 뛰어다니다 보면
거만한 발끝이 걸려 넘어질 때가 있었어
작은 생채기는 꽤 오랜 시간을 신경 쓰이게 했지
벽돌로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거친 벽 앞에선
차마 건드릴 엄두도 못 내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기도 했지
어떤 날은 급하게 뛰어가다 머리를 세게 부딪혔어
겁먹은 손을 어정쩡하게 휘젓고 나서야 간신히
보이지 않는 벽도 있다는 걸 깨달았지
가끔은 영원같이 새까만 벽을 만나
그 속에 갇혀 한참을 울었어
감은 눈이 환해지면 그제야, 해가 뜬 걸 알 수 있었지
내 세상은 너무도 둥글어서
어딜 향해 발을 디뎌도, 펼쳐지는 길은 늘 하나였어
뒤를 돈다는 건 앞을 본다는 것이었고
나아간다는 건 돌아간다는 것이었지
계속해서 피어나는 아스팔트 냄새에 헛구역질이 나고
끝을 모르고 솟아오르는 벽들이 두려워졌어
그래, 그 모든 게 핑계가 되는 그 마지막에 마주한 벽 앞에선
그냥 등을 돌려버렸어
기대어 앉은 것은 더 이상 벽이 아니라고 믿어야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