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어서와, 詩詩한 내 벗』




항아리




물을 담으면 물의 마음으로

물마저 비우면 비어 있는 마음으로

겉만 내보이고 속은 깊이 감춘 채


산산이 깨어질 때

비로소 제 깊은 속 모두 내보인다



이 시는 오래전에 쓴 시이다 통도사 서운암에 가면 수많은 장독대가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암자를 지키는 든든한 수문장 같기도 하고 저 많은 장독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저 장독들은 언제 어떻게 생겨나서 그곳에 나란히 줄을 지어 꼼짝을 못 하고 붙들여 있는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속이 궁금했다

사실 뚜껑이 열린 모습도 사용하는 사람의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사열하는 병사들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고 깔끔한 자태로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어 보였다 일견 신기하면서도 일견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어갔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항아리는 언뜻 보면 잘 모르지만 깨어졌나 아니냐를 알아보려면 주먹을 쥔 채로 항아리 배 부분을 통통 쳐 맑은 소리가 나면 깨어지지 않은 독이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면 겉보기는 멀쩡해도 십중팔구는 금이 가서 잘 독의 구실을 할 수 없다 항아리의 속은 어지간히 금이 가고서도 잘 알아채지 못한다 다만 완전히 깨어져서 자신이 만든 허공마저 내어 놓아야 속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제 속을 생긴대로 다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속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속이 다드러나느 사람이야 궁금할게없지만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의 속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그 속을 누가 알아주며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장독 속의 장이 푹푹 썩어야 깊은 맛이 나듯 사람도 마음을 푹푹 썩으면 진짜 사람이 될까 그런 말들을 하고 듣고 살았지만 난 정말 궁금했다 사람 속은 푹푹 썩으면 치매나 화병만 생기는게 아닐까 간혹 도인이 되어 사리가 생기기도 하지만.

장독의 속이 사람의 마음 속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길래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 쓴 시이다

이곳의 장독도 가만히 보면 수준이 다르고 무늬도 손길도 다 다르다 거꾸로 물구나무 서 있는 장독이나 바로 서서 제 구실을 하는 독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심심찮다 이곳에서도 장독은 잘 보이지 않고 오래된 옛집 마당에서나 가끔 볼 수 있다 시골이라 그런지 내다 버린 항아리들도 곳곳에 있다 시류를 타서 그런지 사람들이 장을 담지 않아서인지 항아리들이 거꾸로 서서 빈들이나 마당 한 구석에 서서 집을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본다

한때이긴 하지만 버섯집이라고 해서 깨진 독을 기와 대신으로 얹어 지은 찻집을 간 적도 있다 항아리의 역할이 변할 것일까 어쩌면 장을 담는 용도로 사용하는 항아리는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고 더 많이 본 것 같다 시골 살림이라고 다들 장을 담아 먹지는 않나 보다

이전 06화애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