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심었더니
토마토와 봄 꽃을 키웠던 화분에 가을꽃을 기다리며 꽃씨를 뿌렸다. 씨앗을 심고 싹이 돋는 건 금방이다. 송골송골 싹이 무성해진 여름의 끝. 비예보가 있는 걸 확인하고 마음 놓고 강원도 동생네에 다녀왔다. 막내 응급실 이슈로 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졌는데 비마저 오지 않아 며칠 만에 찾아간 우리 집 화분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어있었다. 개중에 살아남은 두어 개를 두고 시든 잎을 정리했다. 다시 씨앗을 심고 마른 흙에 넉넉히 물을 주었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 마른 날씨에도 남아있던 잎이 그새 자랐나 싶더니 봉오리 끝에 나비가 앉아있다. 손가락 두마디보다 작고 검은 점을 가진 나비는 먹부전나비였다. 꽃이 아직인데 나비가 찾아온 게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다 그만 경계 많은 나비를 놓쳐 버렸다.
매일 화분을 살폈다. 나비는 이후로도 이따금 찾아왔고 벌과 노린재도 보였다. 지나가는 곤충들이 이렇게 풀 잎에 앉아 쉬기도 하고 물을 먹기도 하며 손님이 되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집 마당 생각이 난다.
7남매 모두 분가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둘 만 남은 집 마당에는 할머니의 화분과 고양이 밥그릇이 있었다. 할머니는 고무신, 깨진 그릇 따위에 꽃을 심고, '나비야 나비야' 부르며 고양이 밥을 챙겨주었다. 언제고 떠나는 길고양이지만 배고프면 찾아올 고양이와 꽃이 피면 날아올 벌과 나비가 쉬어가라고 고양이 밥그릇에 밥을 채우고 화분에 물을 주었다. 찾아오는 게 무엇이든 나비나 고양이처럼 잠시 왔다가는 것일지라도 반가워했던 할머니는 댁에 간다고 연락하면 그 말을 듣자마자 벌써 마음이 마을 입구까지 배웅 나오는 분이셨다. 언제 오나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할머니에게 우리는 짧은 동동 거림을 귀찮아하는 마른 마음, 잠시의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무심한 마음으로 불쑥 갔다가 홀연히 떠나기만 했다. 할머니는 오래 기다리고 마음껏 반기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던 것인데 어째서 함께 반가워하고 오래 아쉬워하지 못했던 걸까. 뒤늦은 후회를 하는 동안 할머니의 시간은 엄마의 시간, 고모의 시간이 되어 있다. 머지않아 나의 시간이 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흔한 기다림의 시간이 말이다. 그때가 되면 나도 화분에 물을 주고 고양이 밥그릇에 밥을 채워 넣을까. 나풀나풀 어디고 날아, 사뿐사뿐 어디든 찾아가는 고마운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