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어린아이를 만나거든

무심코 건넨 돈이 아이를 망칠 수도...

by Rosary


코로나로 꽉 막혔던 하늘길이 다시 열리고, 3년 동안 꾹꾹 참았던 여행 욕구가 봇물 터진 요즘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가방을 꾸리며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멀리 가는 분들도 있고, 가까운 곳에 가는 분들도 있겠지만, 짧은 일정으로도 다녀올 수 있는 동남아시아는 여전히 인기 있는 여행지일 것이다.


어느 해인가 벼르고 별렀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에서 일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여전사 라라 크로포트로 출연한 <툼 레이더>의 촬영지로 유명한 타 프롬 사원에 막 들어서니 10대로 보이는 소년들이 따라붙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더니 자기들이 사원 안내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어보니 공짜라며 걱정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초보 여행자에게는 흔히 통하는 수법이지만 내겐 안 통하지. 전날에도 어린아이들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고 따라다녀서 곤혹스러웠는 데 오늘도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소년들이 안쓰러워서 내 딴에는 큰 인심을 쓴 금액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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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정도 따라다니면서 몇 마디 하는 게 전부라는 걸 알기에 5달러면 되냐고 물었더니 소년들 표정이 확 달라지더니 30달러는 줘야 된단다. 그럼 그렇지. 그냥 무시하고 사원으로 향했더니 계속 따라붙으면서 20달러에 해준다, 10달러 이하는 절대 안 된다고 통사정이다. 그래도 무시하고 가니까 한 소년이 이렇게 악을 쓰는 것이다. “당신들은 부자나라에서 여행 온 건데 돈을 써야 될 것 아니야. 우리는 가난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기막히면서도 살짝 무서웠지만 소년들은 포기가 빨랐다. 다른 여행객들이 들어서자 얼른 그들에게 향했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좋아하지만 곳곳에서 어린아이들이 손을 내미는 걸 뿌리치는 건 참 난감한 일이다. 일부 관광객들은 여행의 즐거움을 망치고 싶지 않거나, 약간 우쭐하는 기분을 만끽하는 맛에 아이들에게 선선히 큰돈을 내주기도 한다. 혹은 선의로 아이들이 가엾어서 돈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고 심리학자 김태경 교수는 조언한다.


성인들이 관광객을 따라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관광객을 따라다니는 일은 대부분 아이들 차지다. 관광객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데 아이들은 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관광객을 따라다니는 시간은 그들이 학교에 가있어야 할 시간이다. 관광객이 건네준 돈으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있을까? 아이들이 관광객에게 받은 돈이 커질수록 그들은 그 집안의 가장이 되어버리고 교육받을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 수 없는 성인이 되면 그때 그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다시 그 아이들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여행지에서 잠시 스쳐버리는, 돌아와서 기억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그 찰나의 순간이 누군가의 일상을 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나의 해방감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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