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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Sep 10. 2024

예술 분과로서의 나르시시즘(1)

울리희는 끄윽 트림했고,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먼지 먹은 잉크 냄새, 상한 우유 냄새, 비릿한 올챙이 냄새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울리희는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울리희는 많은 것들을 먹어왔고, 인간은 결국 자신이 먹은 것들의 총체이므로, 울리희는 하는 수 없이 그 많은 것들의 총체였다. 

그것이 울리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러저러한 사물들이 뒤얽혀 만들어낸 그로테스크한 얼굴이 울리희 자신을 마주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물들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울리희의 피부를 뚫고 나와 아우성을 내지를 수도 있었다.

그것이 소화불량의 원인일까. 

킁킁.

나는 비위가 약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겠으므로 콧구멍을 크게 개방하고 울리희의 트림 냄새를 맡아 보겠다. 울리희에게 소화불량을 유발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겠다. 

나는 셰퍼드처럼 성능 좋은 코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 소화불량을 유발했을 것이다.     


네덜란드 '정자 기증 왕' 피소…"근친상간 초래할 위험"
"수년간 정자 기증으로 550명의 아빠 돼"…"정부는 손 놓고 있어" 지적도1)     
마르크스의 『자본』을, 자신을 매혹했던 『율리시스』의 내적 독백을 사용해 영화로 만들어보겠다는 에이젠슈테인의 생각은, 요란한 농담이거나(스탈린이 바로 그렇게 반응했는데, 그는 에이젠슈테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혹은 오늘날 예상치 않게 긴요해진 선지적 예견처럼 보일 수 있다.2)
[…] 카를 마르크스는 1818년에 태어났다. 지금(알렉산더 클루게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15년) 그가 살아있다면 197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물려준 도구와 개념들을 종종 다듬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일은 어느덧 우리에게 고대 세계만큼이나 멀고 낯설게 느껴진다.3)     


울리희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지르듯이 두드렸고 까스활명수를 들이켜듯 생맥주를 들이켰다. 

울리희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수염은 불시에 흡입된 불쾌한 냄새를 뱉어내려는 듯 코를 찡긋거렸다. 수염의 콧수염에 맺혀 있던 맥주 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수염은 마르크스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또 마르크스처럼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길었고 마르크스처럼 신문을 만든 적이 있었고 마르크스처럼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러면 수염을 수염이라고 할 게 아니라 마르크스라고 해야 하지 않아? 그러나 울리희는 고개를 부르르 떤다. 아무래도 수염을 마르크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뭐랄까 신성모독 같은 일이지 않나 싶은 것이다. 지금은 냉담자가 되었다지만 울리희도 몇 달 정도는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으므로 아무나를 마르크스라고 부르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206살이 되었을 것인데, 수염을 구태여 마르크스라고 불러서 206살이나 된 마르크스가 사상전향을 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 미래의 어떤 마르크스가 탕비실에서 믹스 커피와 컵라면을 훔쳐 먹는 것으로 착취와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려 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 아무리 마르크스라도 전향서를 쓰게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래서 수염이 수염인 것은 다행한 일이었고. 

울리희와 수염은 독일 사람처럼 꽐꽐꽐 맥주를 마셨다. 


550번의 정자 기증이라니.


울리희는 소화되지 않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이 중얼거렸다.

수염은 소시지를 씹으면서 정자 기증을 되새김질하는 울리희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이 되새김질을 끝내려면 확실한 리액션을 해주어야 할 것이었다. 수염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세를 부를 일이로군. 봐라. 이것이 유전자의 명령이다. 복제하라! 증식하라! 생존하라! 


수염은 포크로 허공을 찌르는 시늉을 하며 전투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울리희는 수염의 웃기지도 않는 연극에 웃지 않았고 오히려 한 방울의 웃음이라도 흘릴세라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러고는 여기저기서 날아든 상념의 다발들이 실뭉치처럼 뒤얽혀 있는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엉망으로 꼬인 실뭉치를 풀어내려면 코바늘이 필요할 것이었다. 울리희는 엄지손톱으로 검지 손톱을 쿡쿡 누르면서 가상의 코바늘로 엉킨 실뭉치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1) 연합뉴스. 2023년 3월 29일자 기사.

2)『<자본>에 대한 노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알렉산더 클루게. 문학과지성사. 7쪽. 

3)『<자본>에 대한 노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알렉산더 클루게. 문학과지성사.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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