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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안 Nov 18. 2022

계절일기

4

  “나는 괜찮은데, 집이 봉쇄되어서 못 나가.” 

  실없이 웃음이 났다. 괜히 걱정할까 봐 도진은 일부러 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최소한의 정보만 주었던 거였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다.   

  - 그 회사에는 중국에 있을 만한 사람이 당신 하나뿐이야?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풀릴 문제도 아닐뿐더러, 네이티브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난 중국어 실력과 중국에 대한 경험이 그를 취직하게 한 이유였으니까. 

  알고 보니 도진은 메시지를 보내왔던 어제저녁부터 이미 봉쇄 중에 있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서 삼일에 한 번만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바깥출입도 최대한 자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특히 전염병 환자가 나온 회사에는 일주일 간 출입을 금지한다는 통지가 내려졌다고 했다. 사스 때처럼, 그렇게 겨울에 반짝 유행을 하는 계절성 폐렴 아니겠냐는 말을 주변에서 나눈다고 했다. 그러면 봉쇄 조치는 언제 까지냐고 묻는 내게 도진이 말했다.

  “그게 문제야. 아직까지는 아무도 몰라.” 

  전화를 끊고 나는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얼마 전에 왔던 눈 때문인지 멀리 설산이 수묵화 그림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그 앞으로 건물이 지어질 모양인지 타워크레인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겨울인데도 따뜻한 햇볕이 아파트 앞 동을 내리 쪼는 중이었다. 아이는 내가 준 주스를 먹고 뽀로로를 보며 다시 티브이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따뜻한 겨울 빛이 흘러들어 아이의 몸을 덮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한 오후에, 이렇게 평화로운 한낮에, 대체 도진은 어떤 일을 겪고 있는 걸까.  

  갑자기 시간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전염병의 위험에 노출되기 전에 이런 일이 생긴 게, 다행이라면 다행 아닌가 하는 생각이, 도진이 그 난리통 속에 있다는 괴로움을 잠깐 잊게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중국행이 막혀버린 지금의 시점이 묘하게도 우리를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인의 입국 자체를 금지하려고 한다는 말은 전염병이 확대되지 않기 위해 관리하겠다는 말이니까. 막히기 전에 중국에 들어가 이 상황을 겪어야 했었더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는 그곳에서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그러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가 다른 그곳에 가서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고민하는 외부인이었던 내가, 병원체를 전염시키지 않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들에게 반감을 느끼는 아이러니가 이상하게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괜히 인트라넷에 들어갔다가, 휴직계 최종 결재란에 완료된 소장의 전자 서명을 괜히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일주일 후에도 나와 재인이는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침대에서 깨어났다. 지난 3년 동안의 아침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출국 준비에 한참이었던 일주일 전보다 더 끔찍하고 엉망인 기분이었다. 갈 준비를 했을 때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았고 대부분은 짜증이 난 상황에서 일을 처리했다. 비행기를 탈 날짜를 변경하기 위해 동방항공 한국 지점에 전화를 수십 통 했고, 그러다가 결국 취소를 결정한 뒤에는 구매 가격의 절반이 된 돈만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다시 전화를 수십 통 했다. 그것마저 언제 처리될지 정확하지는 않다는 말에 하마터면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제발 그 정도 서비스는 앱으로 탑재해두라’고, 애꿎은 서비스 센터 직원에게 심한 말을 할 뻔했다. 여행자 보험을 파기하고, 필요 없어진 각종 서류들을 정리해 처박고, 쌓여있던 짐을 결국 풀어 집의 공간을 채웠다.

  다시 상황을 되돌리는 시점에서는 내 회사 문제보다 아이 어린이집 복학 문제가 더 어려웠다. 내 경우에는 휴직계를 취소해야 하는 이유만 정확하면 무리가 없었지만 재인이의 경우는 아니었다. 이미 어린이집 대기자들이 많았던 데다, 재인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적어도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인이를 대기자 명단에도 올리지 않았었던 거였다. 단지 그 이유로 재인이의 시간이 붕 떠버렸다. 

  재인이를 데리고 회사에 가야 할 정도로 스케줄이 꼬였을 때, 전화로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하다가 나는 실컷 울어버렸다. 모든 게 다 엉망이 된 느낌이었다. 다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고, 이미 포기했던 일이나 승진 같은 것들이 다시 내 바운더리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조차 무서웠으며, 도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도진에게 이상하게 화가 났고, 죄 없는 도진에게 그런 마음을 갖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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